[칼럼] 기득권을 지키려 폐기하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더욱 가중

중선거구제는 분명 소선거구제보다 다양한 주민 여론을 대변한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석이 너무 적어 오히려 이것이 다수 정당의 인센티브로 변질된 탓도 있고, 특히 2인 선거구의 경우 다수 정당의 석권이 변함없이 용이하기도 해서, 국회의원 개개인들에게 여론의 다양성을 불어넣기에 아직 역부족이고 영호남의 '지역구 체제'도 여전히 공고하다.
정치는 사실 대국민 신뢰로 연결되는 표밭의 기본이다. 신뢰는 선거공약 약속을 얼마나 제대로 잘 지키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이구동성으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하고 적극적 지지를 호소했다.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예속화를 막고 진정한 주민 자치에 기반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활성화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내년 6월 4일 지방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가 오리무중으로 오락가락 안개만 피우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국회의원들의 속내는 정당공천제 폐지가 무산될 가능성도 높다고 감히 판단한다. 여야 정치권이 선거공약 실천에 소극적이거나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필자는 볼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4월 재보궐 선거 때 기초의원 공천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당공천제 폐지에 적극 반대하는 의견이 득세했고, 당론 수렴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확고히 지켜주는 뒷받침은 커녕 오히려 대선 공약을 뒤집어 엎을 명분만 찾는 모양새다. 야당인 민주당은 찬반 논란 끝에 최근 당론으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확정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공직선거법 개정 등 후속조치에 팔짱을 끼고 있다.
여야 간 정쟁에 밀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문제를 다루는 국회 정치쇄신특위마저 개점휴업 상태다. 풀뿌리 민주화를 빌미로 지방자치 부활 20년이 넘었지만, 지방의회 의원들은 아직도 국회의원들의 수족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물론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에 상당한 문제점도 있을 수 있다. 정당공천 폐지로 여성과 신인의 정치참여 방해, 후보 변별력 약화, 지역 토착 토호들의 득세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여성명부제나 남녀동반선출제, 기호제도 폐지, 광역선거와 기초선거 분리 등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제도적 수술은 기초의원뿐만 아니라 광역의원 선거에서도 절실하다. 대구시의회의 경우 교육의원을 제외한 모든 의석은 새누리당이 전석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대구시의회 정당 명부에서 얻은 득표율은 55%였고, 새누리당외 친박연합까지 합쳐도 70%다.
이는 30%의 표심이 의회 구성에서 완전 빠졌다는 점이다. 국회와 유력 정당이 호남과 영남에서 기득권을 포기했다고 자부하려면, 스웨덴식 대선거구제나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도입해야 하지 않는가 한다.
따라서 여야는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다가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국민에게 약속한 대선 공약을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지키려 폐기하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더욱 가중될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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