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인의 유서 파일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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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인의 유서 파일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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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는 역사의 증인, 살아 있는 공헌자다

존경하는 자식님들께 !


감히 천한 이 애비 놈이 세태(世態) 탓인지, 늦겨울 탓인지, 부쩍 자진(自盡)하고픈 마음을 가눌 수 없습니다. 고상한 말로 쓰자니 자진이지 바로 자살이지요.

 

´방귀를 자주 끼면 똥싼다´는 속어처럼 제 마음을 저도 주체할 수 없어 자살을 결단하기 전에 이 욕된 글을 미리 컴 속에 남겨둡니다.

"아니, 자식에게 ‘님’이란 경어를 쓰다니, 애비 놈이 치매에 걸렸나" 하고 속단하지 마십시오. "제 머리는 명경 같이 맑습니다" ´님´이란 존칭을 빼먹으면, 혹시 젊은 님들로부터 몰매를 맞지 않을까 겁이 납니다.

 

친북 좌파 정권 시의 아픈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는 군요.

내 노라 하는 늙은 유명인들 천오백 명이 서명을 하고 국보법 반대를 목이 터지어라 외쳐도 젊은 권력자들은 코 방귀만 끼고 있지 않습디까.


대한민국을 북으로 넘기려고 혈안이 된 친북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맨주먹으로 궐기한 30만 명의 애국시민들이 광화문에서 효자동으로 진출할 때 물총을 쏘고, 곤봉과 방패를 휘둘러 겨우 숨만 붙어있는 늙은이를 짓이겨 다치게 했던 경찰은 사과는커녕 대회를 주최한 국민협의회 지휘부 4명을 형사범으로 소환장을 발부하기도 했습니다.

 

하도 울분이 터져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죽고 나면, 자식님 보다는 내 또래의 친구와 이웃의 늙은이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60대 이상 노인들이 이 글을 보기를 바라면서 쓰는 것이지요.

이왕에 자살 이야기가 나왔으니 통계 자료에 의하면, 2000년에는 노인 자살자가 전체 자살자의 19.7%를 차지했으나, 2005년에는 그 비율이 28.0%에 달해 ´자살자 4명 가운데 1명 이상´이 61세 이상 노인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죽지 아니하려 하여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가 왜 참지 못하고 죽음을 자초합니까.

 

최근에 갑작스레 노인들의 자살율이 높아진 원인의 하나가 국가 권력이 앞장서서 노인들을 모욕하고 멸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불특정 다수를 향하여 ´너희들도 늙지 않는가 보자´고 고함치며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요즘은 이런 울분의 토로도 함부로 할 수 없고, 했다가는 정신병원으로 잡혀갈까 주눅이 들어 더욱 노인이 삶의 의욕을 잃은 염세주의자로가 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지요.

팔팔한 권력자들은 늙어도 명성이 남고, 돈이 많아 그들의 노년을 더욱 화려하게 꾸며 줄 것이라는 울분도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이 되어 '차라리 죽자' 그게 편하다 이거지요.

지금 세태를 살펴보면, 선택된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비하하니 대책이 없고, 편한 길을 찾자니 '눈을 감자, 숨을 끊자' 이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제 자살 동기는 "부디 늙은이들이여! 젊은 님들이 아무리 늙은 놈이라 무시하고, 기분을 상하게 하더라도 고개를 쳐들고, 따지지 마십시오, 그들이 하는 일이면, 무조건 ´옳소´하고 긍정의 박수를 쳐야합니다. 그래야 남은여생이 덜 괴롭습니다" 라는 의미의 경고이지요.

제 한 몸 죽어 5백만 늙은이들이 젊은 님의 궁박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이 어찌 가치 있는 희생이 아니겠습니까.

"3백5십만 예비노인들이여, 그리고 5백만 노들이여 ! 비록 우리 몸통이 쇄진하여 내일 죽을지언정 오늘 우리 힘 모아 젊은 님들과 맞섭시다"

보세요, 노정권 시, 실세였던 정O영씨가 "60대 이상 70십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 면서 "어쩌면 그분들은 이제 무대에서 퇴장할 분들이니까, 그 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된다"라고 말하고, 최근 용산사건 진압의 경찰을 두고 광주학살의 무장 군과 같다고 내 뱉은 천O배 의원이 노 정권의 여당 원내대표로 있을 때입니다.

뉴욕 특파원들과 만찬을 하면서 어떤 기자가 미국교포는 보수주의자가 많다는 취지의 언급이 있다 답하기를 ‘교포노인들이 연세가 들어서 곧 돌아가실 거다. 노인들이 무슨 힘이 있느냐’는 발언을 한 그 때 이후부터 나이 많은 늙은이와 원로들을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퇴물로 취급하고 천대하여 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전O옥 의원이 정권을 향해, ‘노인들은 우리들의 살아있는 역사’, ‘살아있는 증인’, ‘살아있는 공헌 자’들이라 하는 말을 듣고, 그 때 내 가슴에 인 감격의 슬래 임이 아직도 식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자식님이여! 제가 힘깨나 오를 때 일이 갑자기 생각나는군요.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일제치하에서 자랐습니다. 일본 천황이 울먹이며 항복하는 비참한 라디오 육성을, 광복의 태극기가 방방곡곡 물결치는 환희를, 그리고 좌우익 단체들의 투쟁과 반란의 양상을 직접 보았습니다.


6.25 동란의 골육상잔 때는 중 1년으로 고향에서 북 체제의 모순을 경험하였습니다. 감격의 수복을, 4.19를, 장면 정부를, 군사정권의 창출을 체험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젊은 세대들이 직접 경험하지 못하였겠지요.


우리 늙은이들을 두고 위 전O옥 씨가 ´역사의 증인´ "살아있는 역사´ '살아있는 공헌 자'라고 지적한 말은 틀린 말이 아니란 것이지요.

 

60년대 들어 새마을운동과 경제건설의 시대에는 젊은 님들은 아기걸음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입니다. 그래도 흰쌀밥에 우유와 고기도시락을 들고 다니지 아니 하였습니까.

초근목피의 아픔을 잘 아는 우리는 젊은 님들을 보다 풍족하게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고, 건설현장에서, 기계소음 속에서, 열사의 사막에서 밤낮 구별 없이 땀 흘리며 일 하였습니다.

이 어찌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이이요, 근대화의 공헌 자가 아니라고 부인하겠습니까.

젊은님이여!


그대들이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총 수출 1백억 달러를 달성하여 온 나라가 감격에 벅찼던 시대를 아십니까. 당시, 저는 요, 이십대 후반으로 제가 다니던 H합섬(주)이 단일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일억불수출탑상을 받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답니다.

비록 말단 직원이었지만, 가슴에 달고 있는 회사 표식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이런 긍지와 희열을 요즘 젊은이들이 감히 이해나 하겠는지요.

당시 우리는 인권보다 먼저 자식들을 굶기지 아니하는 것이 우선이고, 자식들에게 메마른 강토를 물려주지 않아야 하는 것이 생의 목표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천사 같이 티 없는 자식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오로지 그들의 미래를 위해 내한 몸 뼈 빠지게 일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이 민주화 투쟁기라고 자랑하는 80년대가 늙은이들로 치면 60년대 쯤 시기입니다.

만약 그 당시 탄핵문제나 광우병 소 문제가 있었다 해도 우리들은 그대들을 가슴에 안고 촛불을 쥐여 준 채, 광화문 거리로 뛰쳐나가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린 자식의 눈에 갈등과 충돌의 기억을 남겨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자식이 어른이 되어 탄핵이 국회를 통과한 것도 적법이고,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적법이며, 대통령도 우리가 뽑고, 국회의원도 우리가 뽑은 대표임을 알고, 아버지의 가슴에 안겨 듣던 ´국회를 해산하라´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구호가 과연 정당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혼돈의 세대에 꼬마로 촛불시위의 참여한 일을 상기하며, 기성세대를 불신할 것이고, 정치의 가치관에 회의를 느낄 것입니다.

더욱 정치는 이성의 대상이지 감성의 대상이 아닌데 하고 자기 혐오와 고뇌에 빠질 것입니다. 또 왜 내가 특정정치인을 정치보다 더 사랑하였는지에 대한 잘못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생활과 경제를 요리하는 수단입니다. 정치는 머리로 판단할 일이지 감정으로 처리할 수단이 아닙니다. 노사모가 왜 생겼는지, 박사모, 이사모가 왜 생겨야 하는 지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노무현이가, 박근혜가, 이명박이 자기자식보다 더 귀중하단 말입니까. 사랑하면, 잘못이 있어도 미워할 수 없습니다. 잘하면, 좋아하고, 못 하면 싫어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성이요, 머리이며, 정치란 물건입니다.

이성은 미래입니다. 조상을 위한 미래가 아닙니다. 자식과 후손을 위한 합리적 판단이 우리가 추구하여야하는 정치의 길입니다.

내 후손에게 현수막에 걸린 김정일지도자가 비를 맞는다고 울며불며 철거하는 북의 체제의 인민으로 종속시킬 그 어떤 일에도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철의 무료권을 받으면서 벌써 인간 퇴물이 되었구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고, 이웃 또래들이 앞 다투어 저 세상으로 가는 생의 마감을 보면서 죽음의 공포를 이부자리처럼 덮고 사는 기죽고 불쌍한 노인들이 아닙니까.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능금나무를 심는다」는 스피노자의 외침을 귀담아 듣자고 5백만 전 늙은이를 향해 울분을 토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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