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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 貞 熙 전남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1938년 전남 나주 출생,조선대 생물학과 졸업, 독일 레겐스부르크大 대학원 신학박사, 전남大 명예교수)^^^ | ||
"베네딕토 16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의 자리에 오른 요셉 라칭거 추기경은 1956년 이래 독일 뮌헨 대학, 본 대학, 뮌스터 대학 그리고 튀빙겐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부모님이 묻히신곳. 레겐스부르크 대학으로 돌아왔을 때가 1969년 여름 학기였다.
당시 라칭거 교수의 강의를 듣기 위해 학생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까지 몰려와 3000여명이 들어가는 대학 강당은 빈 자리가 없어서. 많은 이들이 서서 강의를 들어야 했다.
그의 강의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음을 강의가 끝난 후 끊임없이 이어진 박수와 환호성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필자는 독일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명성 높은 라칭거 교수님의 얼굴만 쳐다보며 그의 눈과 입동작을 살폈다. 예리함과 총명함이 로만 칼라의 멋스러움 속에 어우러지던 라칭거 교수가 교황이 될 줄이야 그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냥 바라만 보는 것으로 나는 그를 처음 대면했다. 감히 교수님께 다가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독일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을뿐 아니라 신학 공부를 위한 전제조건인 라틴어. 희랍어. 그리고 히브리어 공부에 매달려야 할 처지였기 때문이다.
4년 동안 부지런히 신학 공부에 정진했다. 1972년 겨울 학기에 나는 그의 세미나 토론강의에 참석하게 됐다. 참석 인원은 20명으로 제한됐다. 토론강의의 주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 선교신학"이었다.
첫 세미나 시간에서 내 발제문 제목은 "한국 선교의 어제와 오늘"이었다. 교수님은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 주셨고 "한국 가톨릭의 순교자 신앙"에 큰 관심과 경의를 보이셨다. 그것이 필자가 그 분의 지도 아래 석사와 박사논문을 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 날로 그의 학문과 덕망을 멀리서 바라만 보았던 나의 "짝사랑"은 끝났다. 그분의 학문과 지혜를 배울 수 있는 학문공동체에 소속된 것이다. 라칭거 교수님은 요한복음의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너희는 종이아니라 나의 친구이다. 종은 주인의 뜻을 알지 못하지만 친구는 친구의 뜻을 안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학문과 지식뿐 아니라. 지혜와 삶을 가르쳐 주셨다. 여러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세계에서 그를 찾아 온 학생들을 제자로 길러냈고. 제자들 대부분이 사제였다.
라칭거교수는 수녀 한 분. 열명의 남자 평신도와 두 명의 여자 평신도를 제자로 길러냈다. 두명의 여자 평신도 제자 가운데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배운 막내둥이 제자가 바로 필자다. 독일말이 서투르고 행동이 민첩하지 못한 나를, 유교문화권에서 자라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내성적인 한국 여성을 선생님은 알뜰하게 챙겨주셨다.
축제 때마다 미천하고 보잘것없는 자를 들어 올려 주셨던 자상하고 온유한 성품을 지닌 스승이 라칭거 교수님이었다.
자상하고 섬세한 스승
1977년 3월 교황 바오로 6세께서 라칭거 교수를 주교로 임명했을 때. 선생님은 축하연 자리에서 "빅토리아"(필자의 세례명)를 부르면서 "먼 아시아에서 온 나의 제자"라고 모든 사람들에게 소개하셨다.
그순간 필자는"미천한 자를 끌어 올리셨도다"라는 "마니피캇"(성모의 노래)을 상기하면서 얼마나 행복에 겨웠는지 모른다. 라칭거 교수님은 늘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자"를 끌어 올려 주셨다.
선생님은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에서 온 제자들에게 관심을 베풀어 주셨다. 때로는 호구지책까지 챙겨 줄 만큼 자상하고 섬세한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한번은 필자에게 "공부도 중요하지만. 밥 먹는 것도 소홀히 하지 마라"고 하면서 장학금을 계속받고 있는지 물으셨다. 선생님의 말을 옆에서 들은 유럽지역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사랑은 공평해야 합니다"라고 항의했다.
선생님은 "너희들은 나의 신부이지만 빅토리아는 신랑(하느님)의 신부이다"라는 재치있는 말로 그 자리를 웃음바다로 만드셨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신랑의 신부'란 하느님의 딸. 교회의 딸을 뜻한다. "너희들은 내 후배 신부이기도 하지만. 빅토리아는 하나님의 딸이니 더 귀하다"는 뜻의 우스갯소리를 하신 것이다.
라칭거 교수님은 여성을 '시온의 딸'로 존엄하고 존귀하게 섬겼다. 연구실을 찾을때면 스승님은 내 코트를 받아 걸어 주시고, 커피를 손수 끓여서 따라 주셨다. 남성을 하늘처럼 받들었던 유교문화권에서 살아서인지 선생님의 친절을 받게 될 때마다 몸둘 바를 몰라 당황하고 쑥스러웠다. 가끔 여성사제(司祭)임용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 교수님은 먼저 나에게 물으셨다.
"빅토리아의 생각은 어떠한가? 가능하게되면 사제서품 받을 것인가?" "아니오, 저는 여성의 사제서품이 가능해도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저는 상황에 의해서 살기보다는 상황과 '관련해서'살고자 합니다. 그보다 먼저 해야 할것은 여성을 존엄하고 존귀하게 생각하는 남성들의 의식을 변화하게 만드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의 의식구조가 변하게 된다면, 그 질문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다시 물으신다고 해도 답은 똑 같을 것이다. 내가 교수님에게 꺼꾸로 질문을 했다면, 선생님은 나에게 아마 이렇게 답해 주셨을 것이다. "남녀차이는 인정하지만 남녀차별은 금물이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에게 봉사하고 그리고 서로에게서 배워야 하는 존재다"
교회와 사회 안에서 남녀가 상호보완하고 협력하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할수있는 그런 평등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선생님의 뜻을 되새겨 보게 된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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