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열풍을 다스릴 정풍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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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주류가 바뀐다!노무현 대통령 탄생의 '일등공신' 정치언론 <오마이뉴스>가 대한민국 '주류'가 바뀐다면서 나팔을 불고 있다. ⓒ 오마이뉴스34호^^^ | ||
한나라당의 이회창 전총재가 언젠가 '메인스트림' 발언을 했다가 언론과 재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 전총재가 발언한 맥락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이제 신주류 논쟁이 일고 있다.
그 논쟁의 중심에 행동하는 젊은 세대가 있다. 6.10 민주화 항쟁 등을 통해 좌절이 아닌 성취를 이룬 세대다. 이들이 주축이 된 신주류에 의해 지금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기본적인 사고와 행동의 패러다임 자체가 통째로 바뀌는 질적 변화다. 여기서는 기성세대의 경험과 가르침이 소중한 것이라는 조갑제식 사고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과거 패러다임의 가장 큰 특성은 조직에 있었다. 이른바 메인스트림쉽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일반인이 이 조직에 들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특별 케이스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주로 조직을 해하지 않으면서 조직의 시혜성을 선전하기 용이한 사람에게 허용되는 것이었다. 타고난 개인기를 지닌 이들의 경우에 흔히 볼 수 있는 케이스다. 조직이 감당할 수 없는 파격이 있는 경우에도 조직은 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때도 심정적인 연대 즉 메인스트림쉽에까지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김대중 정권의 사례는 이에 대한 하나의 좋은 사례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이러한 좌절 의식이 주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래, 당신 말이 맞아' 하는 반응을 보이는 게 고작이었다. '그 말이 맞아'로 끝날 뿐, 그 말을 적극 지지하는 행동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행동은 곧 좌절을 의미하는 때문이었다. 그런데 노무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무시되기만 하던 작은 의견들이 유의미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던 것이다. 이번 대선정국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노무현 열풍, 이른바 노풍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국민 일반의 변화에 대한 열망도 열망이지만, 노무현 캠프가 열린 체제로 운영되었다는 데서 보다 근본적인 의의를 찾아야 한다. 과거의 젊은이들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걸 보면 영낙없는 진보지만, 행동은 그렇게 보수적일 수가 없는 모순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신주류로 부상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정확히 일치한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반드시 행동으로 확인하고자 한다. 노무현은 이들에게 자신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었다.
과거의 메인스트림이 깰 수도 넘을 수도 없는 견고한 벽으로 기능하고 있었다면, 노무현이 제공한 것은 모두가 어우러져 놀 수 있는 너른 마당이었다. 그 열린 마당에서 젊은이들은 자신의 의사를 직접 투영한 결과를 보면서 환호하고 열광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대통령 노무현'을 낳았다.
그렇다면 이제 게임은 끝난 것인가? 아니다. 노무현의 신주류는 아직은 미완의 상태다. 아직은 본질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노무현의 성공은 노무현의 본질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 어쩔 수 없이 꺼내든 카드가 우연히 코드에 들어맞았던 것 뿐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노무현 체제는 일종의 과도기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체제가 안고 있는 이러한 한계와 문제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에는 필연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 주목한다면 게임은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노무현이 지닌 한계를 카바할 수만 있다면 메인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아직도 노무현의 이미지에 긴가민가 하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열린 공간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가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직시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노무현 당선자보다 유리한 후발주자의 위치를 점할 수 있다.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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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네 두목이 부인때리고, 여자앞에서 오줌갈기는짓 자서전에 다 써놨던데..
좀 배우고 실천하여 널리 써먹어라. 니 집구석부터..
여보, 나좀 도와줘
* 저자 : 노 무 현
* 발행처 : 도서출판 새터
* 출판일 : 1994년 9월 25일
* 펴낸인 : 박 영 식
* 판형 : A5
제4장 내 마음의 풍차 - 제3절
노가다의 짝사랑맨날 모였다 하면 화투요, 입만 열었다 하면 욕이다. 옛날 누굴 두들겨 팬 이야기, 여자 겁탈한 이야기, 일 저지르고 도망친 일 등등..... 모여 앉아 궁리하는 거라고는 어떻게 하면 공사장의 모터나 철근,
자재 같은 걸 빼내 나가 팔아먹을까 하는 것들이다.
한 번은 일터로 나가는 길에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에게 음담패설로 희롱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들도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욕만 됫박으로 얻어먹고 코가 납작해져 버린 일이 있었다. 궁리 끝에 다음 날 아주머니들이 지나가고 있는 길거리를 향해 나란히 줄지어 서서는 바지춤을 내렸다. 그리고 단체로 오줌을 갈겨댔다. 밥 먹고 생각하는 거라곤 그런 것뿐이었다.
그 뒤 군대를 갔는데, 군복을 입혀 놓으니 또 그 지경이고, 제대 후 예비군복을 입혀 놓아도 마찬가지였다. 의사건 변호사건 예비군 훈련장에만 가면 어떻게 농땡이를 부릴까 궁리만 한다. 아무 길거리에서나 오줌을 누고, 끝나면 그냥 집에 가도 될 걸 술집에 몰려가 한 잔씩 해야만 하고, 그러다 지나가는 여자나 희롱하고.....
더 심각한건 부인까지 구타했다는 것이다.
제3장 여보, 나좀 도와줘 - 제2절 하늘의 절반
형님 내외는 직장 따라서 부산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시부모 모시고 농사 수발을 하는 일은 아내의 몫이었다. 그러니 아이 키우랴, 집 청소하랴 음식을 장만해서 들에 갖다 주랴, 그 고생이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공부한답시고 모내기하는 날에도 내다보지도 않았으니......
그러나 나는 아내가 조금이라도 불평을 하면 소리를 질러 대었고, 그 말에 심하게 반발을 하면 다시 손을 올려붙였던 것이다. 정말 기억하기에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시에 합격하고 나서 연수원에 다니던 시절, 나는 아내를 다루는(?) 일을 무척이나 힘들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나보다 나이가 어린 연수원 동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 친구들이 보기에는 나야말로 아내 위에 군림하는 남편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어느 날 갓 결혼한 친구들과 함께 소주병을 들고 수유리 뒷산에 올라갔던 일이 있었다. 친구들중 하나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어떻게 노 형은 형수님을 그렇게 꽉 잡고 삽니까? 비결이 뭡니까?"
나는 그 자리에서 무슨 인생의 대선배나 되는 듯이 대답해 주었다.
"조져야 돼. 밥상 좀 들어 달라고 하면 밥상을 엎어 버리고, 이불 개라고 하면 물 젖은 발로 이불을 질겅질겅 밟아 버리는 거야. 그렇게 해야 꽉 잡고 살 수 있는 거야."
물론 농담이었지만, 전혀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것이 나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견딜 수 없는 초조감과 불안감에 나는 급기야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남편이 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로서 매우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견딜 수 없는 초조감과 불안감에 나는 급기야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남편이 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로서 매우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일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