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안산시 사회조사, 조용하지만 단단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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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안산시 사회조사, 조용하지만 단단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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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역할 "판단을 앞서지 않는 것이다. 다만 기준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기록"
김병철 기자
김병철 기자

[뉴스타운/김병철 기자] 도시는 말보다 기록으로 남는다. 정책은 선언으로 시작되지만, 신뢰는 데이터로 유지된다.

안산시가 ‘2025년 사회조사 통계’를 공개한 장면은 그래서 가볍지 않다. 화려한 이벤트도, 대규모 발표도 없었다. 다만 시민의 생활을 수치로 정리한 자료를 차분히 꺼내 놓았다. 행정이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 그러나 늘 쉽지는 않은 선택이다.

사회조사는 시민을 직접 불러 세우지 않는다. 대신 표본이라는 방식으로 삶의 단면을 모은다. 1,200가구, 만 15세 이상 시민, 15일간의 조사 기간. 숫자만 보면 단출하지만, 그 안에는 주거와 일자리, 돌봄과 소비, 문화와 여가가 겹겹이 들어 있다.

안산시는 이 결과를 시청 누리집뿐 아니라 국가통계포털(KOSIS)을 통해 공개했다.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결정은, 곧 비교와 검증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행정으로서는 부담이 없는 선택이 아니다.

결과 역시 과장되지 않았다. 영·유아층은 안심할 수 있는 보육환경을, 중장년층은 일자리를, 여성층은 경력 단절 이후의 회복 경로를 가장 필요로 한다고 응답했다. 새로울 것 없는 답변이다. 그러나 이 ‘익숙함’이 오히려 행정을 향한 메시지다. 수년째 반복되는 요구가 여전히 최우선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정책의 방향이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속도와 체감의 문제가 남아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안산시는 그동안 복지와 일자리, 돌봄 정책에서 꾸준한 시도를 이어왔다. 도시 규모에 비해 다양한 정책 실험이 있었고, 중앙정부 사업과의 연계도 적지 않았다. 이번 사회조사는 그런 정책들이 시민의 일상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잘한 정책은 확인할 수 있고, 충분하지 않았던 부분은 다시 점검할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조사 결과를 ‘시민 의견’이라는 추상적 표현으로 묶지 않았다는 것이다. 계층별로 가장 필요한 정책을 구분해 제시했다는 점은, 향후 정책 설계에서 참고 자료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모든 시민에게 같은 정책을 적용하는 시대는 지났다. 사회조사는 행정이 선택을 정교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지도와 같다.

데이터 행정은 유행어처럼 쓰이지만, 실제로는 준비가 필요하다. 숫자를 공개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그 숫자에 따라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일이다. 사회조사는 정책을 바꾸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다만, 바꾸지 않았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한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이번 안산시 사회조사는 행정절차에 따른 통계 공개 사례에 해당한다. 문제를 숨기지 않았고, 결과를 축소하지도 않았다. 시민이 무엇을 느끼는지를 데이터로 확인했고, 그 데이터를 공개했다. 이 지점까지는 분명 긍정적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이 하나 생긴다. 사회조사가 잘 진행됐다는 사실이, 곧 행정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통계를 공개했다는 이유만으로 시민의 삶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행정의 진짜 평가는 늘 그 다음 단계에서 이뤄진다.

사회조사는 결과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숫자가 공개된 이후, 내부 회의에서 이 자료가 어떻게 다뤄졌는지, 예산 편성과 사업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보육환경을 원하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면, 다음 예산서에서 어떤 항목이 강화됐는지로 확인돼야 한다. 중장년 일자리가 1순위라면, 기존 정책의 한계를 어떻게 보완했는지가 설명돼야 한다. 여성 일자리 지원이 반복해서 요구된다면, 단기 프로그램을 넘어선 구조적 접근이 있었는지로 판단된다.

사회조사는 행정을 비판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행정이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다. 안산시는 이미 그 근거를 마련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근거를 정책 문서와 예산 항목, 사업 결과로 연결하는 일이다. 이 연결 고리가 명확해질수록, 사회조사는 ‘조사’가 아니라 ‘행정 기록’이 된다.

그리고 여기서 반전이 생긴다. 이번 사회조사의 가장 큰 의미는, 사실 ‘무엇이 나왔는가’가 아니다. 이미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진짜 의미는, 이 조사가 앞으로 안산시 행정을 평가할 기준을 행정 스스로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이제부터는 “시민 의견을 반영했다”는 말이 선언으로 통하지 않는다. 사회조사라는 구체적인 기준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음 정책 발표에서, 다음 예산 설명에서, 다음 업무보고에서 이 숫자들이 어떻게 다뤄졌는지가 그대로 남는다. 사회조사는 행정을 보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행정을 점검하는 잣대가 된다.

안산시는 조용히 그 잣대를 스스로의 손에 쥐었다. 잘 쓰면 신뢰가 되고, 외면하면 부담이 된다. 이번 사회조사는 그래서 ‘좋은 결과’라기보다 ‘무거운 시작’에 가깝다. 도시의 선택은 늘 기록으로 남는다. 안산시가 꺼내 놓은 이 숫자들이, 앞으로 어떤 정책 문장으로 다시 등장할지 지켜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자수첩의 역할은 판단을 앞서지 않는 것이다. 다만 기준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다. 안산시는 이미 기준을 공개했다. 이제 평가는, 그 기준을 얼마나 성실하게 따라갔는지로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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