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70년대에 접어들면서 200달러를 넘어서고 77년에 수출 100억불을 달성하면서 1인당 GNP도 1천불시대로 진입하였다.
하지만 당시의목표는 1985년까지 달성이 가능하다고했으나 시기를 앞당겨 1980년으로 결정지었다. 그러나 80년대 시작의해인 80년도 까지 수출 100억불 달성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예상년도인 80년보다 3년 앞선 77년도의 수출 100억불 달성은 신화 그 자체였다.
세계가 놀란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한국경제의 기적은 그야말로 추억이 되어버렸다. 70년대를 보내고 80년대를 맞이했으나 국내외적으로 정치적,경제적으로 혼란을겪던 시기였다. 이란-이라크전쟁,2차오일쇼크,12.12,5.18로 이어진 당시의 자화상이었으나 이후에도 한국은 물가 안정과 두자리수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아시아의 네마리의 용으로 군림하던 시절이었다.
90년대들어 GNP5천달러 95년말에는 7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따라 예상대로 수출 1천억불에 GNP 1만달러시대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경기침체를 겪었으며 IMF라는 난국을 맞기도했으나 불고 3년여만인 2001년 전액을 상환하면서 어느나라보다 가장 빨리 체제를 졸업한 저력을 과시했다.
2002년 극동아에서 최초로 월드컵(비록 공동개최였지만...)을 치뤄내고 피파랭킹 4위라는 광개토대왕의 요동정벌이후 쾌거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감격의 순간을 이뤄낸 민족이었다.
90년대 막바지에는 정보화의 혁명이라는 인터넷의 확산으로 IT강국이라는 말을 지니고 있다. 이제 우리경제는 3차 오일쇼크가 우려될 정도로 고유가시대를 맞고 있다. 90년대초반에도 이러한 위기감이 고조된 바 있었으나 범국민적인 에너지절약에 동참하여 3차 오일쇼크위기를 극복한경력이 있는경력을 거울삼아 이번 고유가시대도 마음과 뜻을모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경제는 장기침체영향으로인한 내수부진과 이로인한 악순환의 연속이다, 한국판 뉴딜정책을 추진하려는 참여정부의 경제대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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