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변불경(處變不驚)’ 왜 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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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변불경(處變不驚)’ 왜 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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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1일 국군의날, 이재명 대통령과 열병식 퍼레이드에 참가한 안규백 국방부장관/춘천MBC 뉴스 화면 캡처
작년 10월 1일 국군의날, 이재명 대통령과 열병식 퍼레이드에 참가한 안규백 국방부장관/춘천MBC 뉴스 화면 캡처

안규백 장관은 ‘처변불경’(정세가 변해도 놀라지 않는다) 발언이 이렇게 큰 논란이 될 줄 몰랐을까? 바보가 아니라면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마오쩌둥의 말이었는지도 불분명한 처변불경을 마오(毛)의 좌우명이자 자신의 좌우명이라고까지 일체화해서 말했을까? 나의 생각엔 논란을 일으키기 위해서다. 만약 그 발언에 저의가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논란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고 짐작해 본다.

왜냐하면 국내에서 이런 종류의 논란은 신선하지도, 얻을 것도 없이 그저 짜증스러운 평지풍파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발언이 신선한 재료로 쓰일 곳이 있다면? 그렇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갖은 비판과 비난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생기지 않을까?

만약 안 장관이 이 발언으로 미국과 중국을 겨냥했다면 어떨까?

이 한마디에 중국은 흡족한 미소를, 미국은 분통 터지는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친중 행보를 보여 온 이 정부에서는 일타쌍피의 효과를 거둔 셈 아닌지? 나는 의심스럽다. 트럼프로서는 놀라 책상을 걷어찰 이 한 마디가 지금 꼭 필요했을까?

굳이 “셰셰!”라고 말한 이재명 대통령이나 이번 “처변불경”은 같은 맥락으로 보면 이해가 간다. “난 친중인데 어쩌라고?”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노골적으로 국민 정서를 자극해 가면서 이런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친중’을 일상화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그런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들이다.

사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김정은에게 USB를 건넨 행위 역시 같은 맥락이다. 꼭 건네주려면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방송 카메라가 줌-업한 포커스에 USB를 노출한 행태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런 패턴을 우리는 ‘노골화(露骨化) 전략’이라고 규정해야 한다. 치명적일 수 있는 행위를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것처럼 일상화하는 전략을 말한다. 대중들은 전혀 뜻밖의 해프닝을 경험하면 잠시 놀라 웅성거리다가 구경꾼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다. 연쇄살인범에 대해서도 그런 신드롬이 자주 나타난다.

그런 관점이 맞다면 이것은 아주 심각한 농락(籠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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