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운/송은경 기자] 예산은 행정의 언어이자 도시의 방향을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인 약속이다. 어떤 사업에 얼마를 쓰고,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는지에 따라 한 도시의 행정 철학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안산시가 올해 주민참여예산제를 한층 강화해 운영하겠다고 밝힌 것은 단순한 제도 운영 차원을 넘어 시민과 행정의 간격을 더 좁히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주민이 직접 예산 편성 과정에 참여하고, 생활 현장의 목소리가 실제 정책과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촘촘히 다듬겠다는 방향은 지방자치의 본질에 충실한 행보다.
안산시는 7일 주민이 직접 예산 편성에 참여하는 주민참여예산제를 올해 더욱 강화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총 152건의 주민 제안사업 가운데 107건, 55억 7700만 원을 예산에 반영해 70.4%의 반영률을 기록했다. 행정안전부 주관 주민참여예산제 평가에서 종합부문 우수상을 받은 점도 이 같은 운영 성과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단지 주민 제안을 접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예산 반영으로 연결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는 더욱 크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제도 이름만 놓고 보면 익숙하지만, 실질적으로 운영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분야다. 주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행정의 언어로 번역하고 사업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는 많은 시간과 조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안산시는 민·관 숙의 토론회, 주민참여예산위원의 현장 방문, 동 지역회의 중심의 사업 발굴 등을 통해 제안을 현실성 있는 사업으로 다듬어왔다. 특히 사업제안자와 담당 공무원이 직접 마주 앉아 숙의 토론을 진행하며 22개 사업의 방향을 구체화한 대목은 주민참여예산제가 형식적 절차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 논의 구조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자의 시선으로 보더라도 주민참여예산제의 성패는 단순히 접수 건수나 반영 규모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주민의 제안이 행정의 검토를 거쳐 생활 현장에서 체감 가능한 사업으로 이어지느냐다. 그런 점에서 안산시가 보여준 지난해의 운영 성과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주민참여예산제가 행정의 보조적 장치가 아니라 시민의 생활 감각을 시정에 녹여내는 통로로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주민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과 개선 요구는 때로는 행정 내부보다 더 정확하게 지역의 우선순위를 짚어낸다. 골목길 조명, 보행 환경, 생활안전, 소규모 편의시설 개선처럼 생활 가까운 문제일수록 주민의 체감과 판단은 더욱 생생하다.
올해 안산시가 총 36억 원 규모의 주민참여예산 사업을 시 참여 공모형 6억 원, 동 주도형 7억 5000만 원, 동 참여형 22억 5000만 원으로 나눠 운영하기로 한 점도 눈에 띈다. 사업 유형을 세분화한 것은 주민 제안의 완성도와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시 차원의 공모형은 도시 전체의 관점에서 필요한 사업을 발굴하는 데 유리하고, 동 주도형과 동 참여형은 보다 생활 밀착형 사업에 적합하다. 특히 동 참여형 비중을 크게 둔 것은 지역 현장에서 직접 체감되는 생활 수요를 예산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이는 지방행정의 흐름 속에서도 주목할 만한 방향이다. 시민이 피부로 느끼는 행정의 평가는 거창한 구호보다 일상 속 작은 변화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통학할 수 있는 환경, 어르신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 주민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 보행자가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골목이야말로 정책 만족도를 높이는 가장 직접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주민참여예산제는 바로 이 생활 밀착형 행정의 접점을 넓히는 데 강점이 있다. 시민이 제안하고, 행정이 검토하고, 지역이 함께 우선순위를 정해 예산으로 실현하는 구조는 지방자치가 지향해야 할 건강한 협업 모델에 가깝다.
올해 새롭게 구성될 제8기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서 청년과 사회적 배려계층의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주민참여가 활성화될수록 중요한 것은 참여의 양만이 아니라 참여의 폭이다.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예산 과정에 함께할 때 비로소 정책은 균형을 갖는다. 청년은 주거, 일자리, 문화, 이동과 같은 분야에서 기존 세대와 다른 요구를 가지고 있고, 사회적 배려계층은 복지 접근성이나 생활환경 개선 측면에서 꼭 필요한 문제의식을 제기할 수 있다. 주민참여예산제가 더 많은 시민의 언어를 담아낼수록 예산의 방향도 더 촘촘하고 현실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안산시가 온라인 예산학교 운영과 대상별 교육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점도 제도의 성숙도를 높이는 요소다. 주민참여예산은 단순히 의견을 제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예산 구조를 이해하고, 사업의 필요성과 효과를 설명하며,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는 과정이 함께 가야 한다. 이때 교육은 주민의 참여 역량을 높이는 기반이 된다. 시민이 제도를 알수록 참여는 더 깊어지고, 제안은 더 구체적이 된다. 행정 역시 주민이 제시한 의견을 보다 세밀하게 검토하고 반영할 수 있다. 참여의 문을 넓히는 것과 함께 참여의 수준을 높이는 노력까지 병행하겠다는 점에서 안산시의 접근은 한 단계 진화한 운영 방식으로 보인다.
주민공청회와 설문조사를 통해 주민 의견이 반영된 정책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제도의 외연을 넓히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주민참여예산제가 특정 위원회나 일부 적극적인 참여자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보다 넓은 시민 의견을 듣는 구조로 확장될수록 정책의 대표성과 수용성도 높아진다. 주민e참여 플랫폼 전자투표 등 디지털 기반 참여 방식을 함께 운영하는 것도 시대 변화에 맞춘 제도 개선으로 볼 수 있다. 온라인 참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줄여 보다 많은 시민의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민참여예산제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민근 안산시장이 “주민참여예산제는 시민과 행정이 함께 지역에 필요한 사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밝힌 대목은 제도의 취지를 잘 압축한다. 주민참여예산제는 행정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시민은 결과를 받아보는 구조를 넘어, 예산 편성 단계에서부터 시민과 행정이 함께 고민하는 체계를 지향한다. 행정에 대한 신뢰는 설명에서 생기기도 하지만, 함께 결정했다는 경험 속에서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안산시의 이번 운영 강화는 시민의 참여를 행정의 부담이 아니라 자산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로 읽힌다.
기자의 눈으로 보자면 안산시의 올해 주민참여예산제 강화는 보여주기식 확대보다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향에 더 가까워 보인다. 지난해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는 사업 구조를 세분화하고, 참여 대상을 넓히며, 교육과 숙의 기능까지 강화하려는 흐름이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는 결국 주민의 삶 가까이에서 작동해야 한다. 그 출발점이 예산이라면, 주민참여예산제는 시민이 지방자치의 주체라는 사실을 가장 현실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제도다.
안산시가 올해 추진하는 변화가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민의 제안을 듣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지역에 필요한 사업으로 연결하며, 더 다양한 시민이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넓히고 있다는 점이다. 예산서 속 숫자는 차갑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시민의 생각과 지역의 필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주민참여예산제가 잘 운영된다는 것은 결국 행정이 시민의 삶을 더 가까이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산시의 이번 제도 강화가 앞으로도 생활 현장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진다면, 주민참여예산제는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 시민과 도시가 함께 성장하는 참여 행정의 모범 사례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의 목소리가 예산이 되고, 예산이 다시 시민의 일상에 닿는 선순환. 안산시가 올해 보여주려는 주민참여예산제의 방향은 바로 그 가능성을 향하고 있다.
기자수첩 한마디 "안산시의 주민참여예산제 강화는 예산을 시민에게 더 가까이 돌려주는 과정이다. 참여의 폭을 넓히고 숙의의 깊이를 더한 이번 시도가 생활 속 변화를 차곡차곡 만들어낸다면, 지방자치는 말이 아니라 체감으로 완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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