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한국, 43일간의 정치적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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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한국, 43일간의 정치적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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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수괴(우두머리)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받는 윤석열이 15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뒷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SNS
내란 수괴(우두머리)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받는 윤석열이 15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뒷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SNS

2024123일 밤 1027분쯤 전격적인 비상계엄령 선포로 한국은 순간 군사 독재시대의 악령이 떠오르면서 그러나 곧바로 계엄령 해제안이 국회에서 극적으로 통과되면서 계엄령이 해제는 됐지만,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2, 3차 계엄령 선언 등 한국 정치는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2025115일 오전 1033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의 협업으로 윤석열을 체포함으로써 일단 정국이 숨을 돌리게 됐다.

아래는 계엄령 선언에서 체포까지의 타임라인이다.

- 2024년 23: 비상계엄령 선언

123일 밤 1027분쯤 윤석열 대통령은 제1야당과 예산 문제, 특활비 삭감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은 후 TV에 등장, 권위주의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비상계엄령을 선언해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극우 유튜브를 열성적으로 시청한다는 윤석열은 북한 공산 세력이 가하는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고,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반국가적 요소를 제거하고 싶다고 말했다.

3일 밤 무장한 계엄군인들이 국회로 향해 울타리를 뛰어넘고, 의사당 건물 유리창을 깨부수고, 헬리콥터로 착륙해 의원들이 계엄령 해제요구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도록 무력을 사용하려 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늦은 밤 수천 명의 시위대가 의사당 밖에 모인 가운데, 의원들은 12412분쯤 윤석열의 계엄령 선언을 무효화 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1900으로 투표, 계엄령 해제요구안이 가결됐다.

계엄군이 철수하기 시작하고 윤석열이 새벽 430분쯤 TV 다시 나타나 계엄령을 해제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 124: 탄핵안 발의

1야당 더불어민주당과 야권은 124일에 탄핵을 추진하고, 공식 동의안을 제출하겠다고 즉시 다짐했다.

그들은 윤석열과 그의 국방부, 내무부 장관, 그리고 계엄사령관, 경찰서장 등 관련된 군과 경찰의 주요 인물들에 대해 반란이라는 별도의 불만을 제기했다.

경찰은 윤석열 등을 내란 혐의로 수사한다고 밝혔다.

- 127: 1차 탄핵소추안

윤석열은 127일에 다시 등장하여 TV 연설을 통해 불안과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수만 명의 윤석열 반대 시위대가 의회 밖에서 집회를 열었다.

몇 시간 후 탄핵소추안은 부결되고 윤석열은 권력을 유지하게 된다. 여야 간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표결이 이루어졌으며, 결과는 찬성 144, 반대 156표로 탄핵 정족수인 200표에 미치지 못해 본회의 자체가 성립되지 못했다.

주요 야당은 1214(토요일)에 대통령 탄핵을 다시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 129일 윤석열 해외출국금지

128, 며칠 전에 국방부 장관직에서 사임했던 김용현이 계엄령 선언에서의 역할로 체포된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사임한다.

법무부는 윤석열 대통령을 출국 금지했다. 현직 대통령의 출국금지는 사상 처음이다. 출국금지는 해외 도피 우려가 있는 조사 대상자가 외국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이동의 자유를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제도이며, 수사기관이 신청하면 법무부 출입국 당국이 승인하게 된다.

공수처는 윤석열 고발장에 적힌 직권남용내란 혐의모두를 적용해 출국금지를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 12월 12일 윤석열 담화

1212일 윤석열은 다시 한번 자신의 충격적인 결정을 옹호하며, 야당이 한국을 국가적 위기로 몰았다고 말했다. 그는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그는 야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마비시키기 위해 우리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수십 명의 정부 공직자 탄핵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찰과 검찰의 특경비, 특활비 예산을 0원으로 깎으면서 민생사범 수사까지 가로막는 게 야당이라고 비판했다.

- 1214일 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

국회의원 300명 중 204명이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85명이 반대표를 던져 127일 회의 불성립에서 14일 탄핵소추안은 통과됐다.

윤석열은 대통령 직무 정지 처분을 받았으며, 헌법재판소는 6개월 동안 표결에 대해 심의할 예정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가의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투표가 끝난 후, 수만 명의 시위대가 의사당 건물 앞에서 환호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 1227: 헌법재판소 탄핵 관련 윤석열 소환

공수처는 윤석열이 일주일 사이에 두 번이나 수사관의 요구를 거부하자 1226일 윤석열에게 세 번째 소환장을 보냈다. 윤은 탄핵과 내란죄로 인한 형사고발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무기징역 또는 사형에 이를 수도 있다.

1227, 야당은 한덕수 권한대행이 윤석열에 대한 조사를 위한 특별법안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한 권한대행을 탄핵했다. 뒤를 이어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겸 부총리가 한덕수 다음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ㅇ디어 받았다.

- 1230: 윤석열 체포영장 발부

수사관은 윤석열이 세 번째 심문에 불응하자 체포영장을 법원에 신청했다. 탄핵 절차가 끝나기 전에 대통령을 강제로 구금하려는 시도는 한국 역사상 처음이다.

법원은 202516일까지 유효한 영장을 발부했다. 윤석열은 이를 불법적이고 무효라고 규규정했다.

- 2025년 11: 윤석열의 대국민 담화

수사관들이 영장을 집행하겠다고 다짐하는 가운데, 수백 명의 그의 지지자들이 그의 탄핵에 항의하며 한남동 관저 밖에 모였있었다.

윤석열은 담화에서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그들과 함께 싸우겠다는 다짐을 거듭 밝혔다.

- 13: 공수처/경찰의 첫 번째 윤석열 체포 시도

수사관들은 윤석열을 체포하기 위해 움직이지만 6시간 동안 긴박한 대치 상황 속에서 경비원들에게 저지당한다.

윤석열의 접근을 막기 위해 수백 명의 경호처 소속 경호원들이 팔짱을 끼고 맞섰고, 공수처 요원들은 보안상의 우려를 이유로 물러나야 했다. 국민들은 공수처의 나약한 모습에 엄청난 비난을 쏟아부었다.

- 114: 탄핵 재판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에 대한 탄핵 심판의 정식 변론기일 시작됐다. 하지만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윤석열이 나타나지 않자 1차 심리는 곧바로 연기되었다.

헌법재판소에는 24일까지 4건의 심리가 더 예정되어 있다.

- 115일 윤석열 관저에서 체포

윤석열의 한남동 관저에 들어가려 하는 사이, 대통령 경호원, 변호사, 지지자들은 모두 체포영장의 집행을 저지하려 했다. 반면에 탄핵 찬성파들의 시위도 함께 있었다.

경찰은 정문에 정차시킨 버스를 건너가기 위해 사다리를 이용해 정문을 통과, 사저가 있는 쪽으로 2, 3차 벽을 지나 윤석열 체포영장을 집행하게 됐다. 공수처는 이날 오전 1033분 윤석열을 체포영장을 집행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윤석열은 사전 녹음된 영상메시지에서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지시를 따랐다면서 법이 무너졌다는 궤변을 잊지 않고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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