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만에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동안 두 정상이 상호방위협정에 서명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양국 간 새로운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를 체결한 직후, 러시아산 아우루스 리무진(Aurus limousine)을 타고 회전하며 돈독한 유대관계를 과시했다.
배포된 영상을 보면, 세심하게 짜여진 홍보 행사에서 먼저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푸틴이었고, 김 위원장은 활짝 웃으며 조수석에 앉았다. 푸틴 대통령이 차를 멈춘 후, 흰 장갑을 낀 보좌관이 차 문을 열어 두 사람이 좌석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영국 헐대학교(University of Hull)의 로버트 도버(Robert Dover) 정보 및 국가안보 교수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방문 사진에서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 사이의 “진정한 공감(a genuine empathy)”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상호방위협정을 포함한 양국의 최근 협정은 푸틴 대통령이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을 시작한 이후 관계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한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회원국이었던 모스크바는 국제 사회와 협력하여 평양의 미사일 및 핵무기 프로그램을 억제했지만,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정권을 명백히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카네기 재단(Carnegie Endowment)의 선임 연구원이자 러시아 및 유라시아 프로그램 책임자인 유진 루머(Eugene Rumer)는 북한이 협정의 추가 세부 사항을 공개한 후 논평에서 이 협정이 “놀라운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썼다.
“북한 독재자의 포옹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을 시작한 이후 그의 행로의 논리적 연장선이다. 그는 승리에 임기 전체를 걸었다. 승리가 불가능해졌을 때, 그는 조국을 파괴하더라도 승리하겠다는 의지로 올인했다. 서방과의 중요한 외교, 안보, 무역 관계를 단절하고 그의 처분에 따라 모든 것을 무기화한다”
이번 협정은 푸틴 대통령이 처음으로 대통령에 취임하고 북한이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 통치 하에 있던 지난 2000년 양국이 체결한 “우호협력선린협정(Friendship, Cooperation and Good Neighbourliness Treaty)”을 대체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러시아가 현재는 없어진 소련의 지배세력이었던 1961년에 체결된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Treaty of Friendship, Cooperation and Mutual Assistance)”과 더욱 밀접하게 일치하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상호방위협정 외에 보건의료, 의학교육, 과학 분야의 협력 조항과 두만강 교량 건설 계획도 포함돼 있다.
북한 관영매체는 해당 내용의 전문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이 협정을 ‘동맹(alliance)’으로 묘사하고, 러시아를 자신의 나라의 '가장 정직한 친구이자 동맹'이라고 선언했다.
김일성 광장에서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환대를 받고, 거대한 자신의 얼굴 초상화와 러시아 국기로 장식된 거리를 질주하는 푸틴의 모습은 조금 더 절제된 모습이었다는 게 알자지라의 보도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거래가 “획기적인 문서(breakthrough document)”였으며 “관계를 새로운 질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양국의 열망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 불처벌의 축(Axis of impunity : 처벌 모면의 축)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1,000km가 넘는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과 잔혹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하기 위해 러시아에 무기를 보냈다고 비난했다.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난 바로 그 주에 미국 국무부는 북한이 최근 몇 달 동안 러시아의 전쟁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수십 발의 탄도 미사일과 11,000개 이상의 군수품 컨테이너를 불법적으로 이전했다고 말했다.
유엔 제재 사찰단(UN sanctions inspectors)은 러시아의 거부권이 만료되기 전 최종 보고서에서 북한의 탄도 미사일 파편이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이자 현재 러시아의 새로운 공격 목표인 하르키우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모스크바는 그러한 지원에 대한 대가로 기술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9월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 비행장에서 만난 지 두 달 만에 북한은 첫 정찰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여행을 떠나기 불과 3주 전의 초기 시도는 실패로 끝났었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번 합의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문제의 틀을 제공해 온 ‘규칙 기반 국제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와 미국에 반대하는 국가들 사이의 동맹 강화의 또 다른 신호라고 경고했다.
평양을 방문하면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북한이 “미국의 압력, 협박, 군사적 위협”에 맞서고 “새로운 다극화 세계 건설을 가속화할 것(accelerating the building of a new multi-polar world)”이라고 말했다.
서울 이화대학교 레이프 에릭 이즐리(Leif-Eric Easley) 교수는 “불처벌의 새로운 축(an emerging axis of impunity)”을 설명하면서 권위주의 국가에게는 권력이 "모든 것"이지만 그들의 관계는 아시아 태평양 및 기타 지역에서 미국과 동맹국 간의 관계보다 덜 안정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과 러시아는 미국과 일본, 한국, 나토(NATO) 국가와의 동맹을 신뢰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공유된 제도, 법치, 기능적 상호의존성에서 부족하다.”고 이메일 논평에서 말했다고 알자지라가 전했다.
다른 사람들은 양국 간의 거래 관계가 더욱 활발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킹스 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의 라몬 파체코 파르도(Ramon Pacheco Pardo) 국제관계 교수는 “역사를 보면 북-러 관계는 주로 이해관계에 의해 주도됐다”고 말했다. 그는 소련 붕괴 이후 경제·안보 관계가 무너졌고, 푸틴 대통령 자신도 2006년 유엔 제재를 지지하기 위해 평양을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1년 아버지 김정일 사망 후 북한 지도자가 된 김정은 위원장을 8년 동안 만나지 않았다.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이번 여행 분석에서 “만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어떤 이유로든 끝나게 된다면, 북한과 거리를 두고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과 관계 강화를 추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썼다.
* 중국 문제
오랫동안 북한의 가장 큰 동맹국이자 경제적 후원자이자 러시아와의 관계를 심화해 온 중국이 있다. 푸틴이 6선 대통령에 오른 뒤 첫 해외 순방을 결정한 곳은 중국이다.
중국 정부는 푸틴 대통령에게 인민대회당 밖에서 레드카펫을 제공했고, 푸틴 대통령은 이후 중난하이(Zhongnanhai) 지도자 숙소 테라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차를 마셨다.
2023년 양국 간 양자 교역액은 2400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중립을 표하면서도 모스크바의 전면적인 침략을 비난하지 않은 중국은 이제 러시아의 1위 무역 상대국이 됐다. 서울, 워싱턴, 도쿄의 비난과 대조적으로 베이징의 대응은 더욱 미온적이었다.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관해 질문을 받자, 중국 외교부 린젠(林剑, Lin Jian) 대변인은 협정의 '양자적 성격(bilateral nature)‘이라고 말해 한발 물러서 있는 입장을 나타냈다.
린젠 대변인은 지난 21일 북한을 공식 명칭으로 지칭하며 “러시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Russia and the DPRK) 간의 협력은 두 주권 국가 간의 문제”라고 말하는데 그쳤다.
분석가들은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를 안정시키고 유럽에서도 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북한, 북한과 중국, 중국과 러시아 등 지역 이웃과 마찬가지로 ’관계의 양자적 성격(bilateral nature of the relationships)‘을 강조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달 중국은 4년여 만에 처음으로 한·일 고위급 회담을 재개했다.
윤선(Yun Sun) 유엔 안보리 중국 프로그램 국장은 “중국은 동북아시아와 더 넓은 지역, 심지어는 글로벌 세력 균형의 양극 협정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수렁에 빠지기보다는 선택의 여지를 열어두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이 국제질서 개편에 대한 러시아의 비전을 공유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복잡한 문제가 작용하고 있다.
로버트 도버는 “분명히 반(反)서구 블록이 형성되고 있다”며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은 아프리카 전역, 특히 바다에 접해 있는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행동”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미 80년 가까이 글로벌 거버넌스의 핵심 기관이었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기관의 대응을 방해하려는 의지를 보여왔다.
양국은 러시아산 ’아우루스‘에서의 두 지도자의 친밀함을 나타내는 신호일뿐만 아니라 2024년 러시아가 한때 틀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던 바로 그 UN 제재를 기꺼이 좌절시킬 의지가 있다는 표시였다. 기존의 규칙에 의한 세계 질서에 대한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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