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어린이 날이며 스승의 날이며 부모님의 옷깃에 카네이숀 꽃 한 송이를 달아주는 어버이 날 이기에 5월은 가정의 달이며 문화의 달이요 실록의 계절이라 일 컷는다.
꽃밭에 둘러앉아 손주들의 재롱 속에 흠뻑 젖어야 할 이순을 훌쩍 넘은 5월의 한 밤 중 YTN 뉴스에 시정잡배가 불쑥 등장, 신당 창당을 통해 "5.18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5.16 잔존 세력들을 척결해야 한다"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연전 대선 당시 대구에서 "6-70대 노인들은 투표할 가치도 없다"는 패륜의 망언을 서슴없이 주절대던 방송 앵커 출신의 정동영이 오늘 밤도 세치 혀를 제멋대로 주절거린다. 엊그제까지 집권 여당의 당의장에서 통일부장관까지 권세를 누리던 자가 자신이 주군으로 섬겼던 노대통령을 향해 반기를 들다 친노파(이광재의원)의 발끈한 공세에 놀라 신당 창당만이 5.18 정신을 계승하고 잔존한 5.16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 고? 잠꼬대 같은 5.16 타령은 왜 하는가?
필자는 푸른 5월의 창공에 휘날리는 현수막과 광주와 나주, 멀리 해남군청 앞 정문에 설치된 5.18민중항쟁 분향소,그리고 5.18민중항쟁 28주년기념행사"를 알리는 선전탑을 지켜보며 잔인했던 치욕의 5.18 광주사태를 회고 한다.
28년전, 광주사태로 생존권이 달린 직장을 잃었으며 사태 주범들이 유신 언론 타도라는 이유로 방송국을 불태우고 신문사들을 타도 했기에 군부대로 피난을 했고 경찰서가 점거되고 치안 부재 속에 피신한 곳이 예비군 대대였고 부대를 내 놓으라는 무장 폭도들의 아우성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서른 일곱살의 나이에 대대장과 함께 총을 쥐고 무장 시위대 진압에 나선바 있다.
부대에서 고립되어 4박 5일 동안 여섯끼를 굶어도 보았고 뜬눈으로 3일 밤을 보냈었다. 80년 5월 27일 전남 도청이 회복되고 계엄당국이 김대중씨를 내란 음모 혐의로 수감 될 즈음 사필귀정 이지만 그에게 연민의 정으로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80년 11월 국보위의 언론사 통. 폐합 조치로 1도. 1사 원칙에 따라 광주에 있는 전남일보 와 우리 신문사<전남매일신문사>가 통합 결정이 났다고 하였다. 아무튼 정부 의 시책으로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신문용지 절감과 사이비기자 척결로 밝은 사회 만들겠다는 정부의 언론 정책에 불평 한마디 못한 체 국보위의 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통합 결정, 5일만에 하늘이 무너지는 비보가 들려왔다. 사주 <고, 심상우사장. 민정당 총재 비서실장,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사건으로 순직)>의 재력 탓에 통합이 아닌 흡수 폐합으로 돌변, 입 한번 벙긋 못 한체 밥줄이 끊겼다. 필자는 당시 이광표 문공부 장관의 발표를 굳게 믿었다
"존경하는 언론사 종사자 여러분 정부는 통, 폐합 과정에서 한 사람의 이직자가 발생치 않도록없도책임 을 다 할것"의 문공부장관의 발표 이후 필자는 28년 동안 무직 상태다.. .이게 생치가 아니던가, 아직 인치가 또 남아있다.
광주사태 수습 이후 줄줄히 잡혀간 민주화 영웅들에게 쫒겨 살기 위해 걸머진 칼빈 소총 때문에 그들에게 죄인 인양 죽었노라 살아 왔는데 5공 청문회 스타들이 등장하고부터 그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더니 국민의 정부 들어서기가 무섭게 머리띠 둘러매고 민주화 운동이요, 민중 항쟁의 기수를 자처 하니 이 또한 인치가 아니든가?
졸지에 직장 잃은지 28년 째, 당시는 경찰서를 기습하고 총기를 탈취했던 그들을 폭도로 알고 피난처인 예비군 대대에서 총을 들었던 계엄군과 향토 예비군인 필자는 정동영이 외친 5.16 잔존세력인 유신 언론인으로 남아 5.18 민주화 유공자들과 당시의 폭도들에게 진압군이란 반역자 누명을 쓰고 28년 째,찾아 온 잔인한 5월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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