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우리나라 댐의 시초는 언제,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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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우리나라 댐의 시초는 언제,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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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의 기원은 물을 이용하기 시작한 인간의 문명과 함께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시아 몬순지역의 다우지대에 속하고 년간 강우의65~ 70%가 하절기에 편중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농경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벼농사를 위한 관개시설이 예로부터 발달하게 되었다.

학자와 전문가들은 가장 오래된 댐은 전라북도 김제시에 위치하고 있는 벽골제를 댐의 시초로 보고있다. 1975년 벽골제 발굴 당시 댐의 길이가 약 3,300m이었고 규모는 높이 5.7m, 길이 3,240m, 댐정상폭 10m, 댐저폭 21.0m, 댐체적 286,254㎥으로서 백제의 비류왕(比流王AD 330)때 에 축조된 것으로 밝히고 있다.

벽골제는 고대 일본의 토목공사 기술이 백제로부터 건너간 것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댐개발사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고 한다. 또한 황등제(黃登堤)는 전북 익산시 황등면에 위치했던 제언으로 전라북도 옥구군(現 군산시)과 익산군(現 익산시)의 평야 일부를 관개하기 위한 수원으로 축조된 것이었고, 황등제는 벽골제와 더불어 백제중기 전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는것이 학계의 통설이라는 것이다. 황등제규모는 길이가 1,100m(당초)에 달했던 토제(土堤)로서 증축후 약 3,300ha까지를 관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근세에 와서 토사로 인해 매몰되어 관개기능을 상실하였고, 1909년 이곳에 임익(臨益) 수리조합이 설립되면서 황등제는 개수와 증축을 통해 조합에 흡수되고 현재 남아있는 토제는 요교제(腰橋堤)로 개명되었다고 한다.(건교부 산하 수자원관리 자료 참고)

또한,신라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알려진 시제(矢堤), 의림지(義林池), 대제지(大堤池), 수산제(守山堤) 및 공검지(恭儉池) 등이 학교 교과서,문헌기록 등 으로 나타나 있다.

특히 시제는 벽골제보다 약 백년 뒤인 AD 429년(신라, 눌지왕 13년)에 축조되어 그 규모가 벽골제보다 큰 규모였다는 기록이나 현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는 댐은 제천의 의림지, 영천의 청제, 밀양의 수산제 등인데, 의림지(충북 제천시 청전)는 현지 관계자의 증언에 의하면 댐의 규모는 높이 15.0m, 길이 310m, 저수용량 501,000㎥의 규모이고 1914∼1915년 용수공급을 위한 복통(覆桶) 개수공사를 수행하였다고 한다.

대제지에 관해서는 문헌기록을 찾을 수 없으나 구전 해오고있고, 수산제는 서력기원1)을 전후하여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며 제방 길이는 728보(步)2), 저수지 둘레는 20리(里)3)의 관개용 저수지 라는 것이다.

위치는 밀양의 속현이었던수산현으로 현재의 하남읍(下南邑), 수산리(守山里), 귀명리(貴明里) 지역과 초동면(初同面)의 검암리(儉巖里), 금포리(金甫里)에 분포된 것으로 추정되고 현재는 댐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영천의 청제(경북 영천시 도남동)는 1968년 신라 삼산조사단에 의해 규명이 되었는데 축조시기는 AD 530년(신라 법흥왕 23년)에서 AD 596년(신라 진평왕 18년)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얼마전현지조사 결과 시설규모는 유역면적 1.35㎢, 댐높이 12.5m, 댐길이 244m, 저수지면적 0.214㎢, 저수량 521,200㎥이며, 시설규모가 당초의 것인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고려조 때는 995년(성종 15년)에 공조산하에 우수부(虞水部)를 설치하는 등 수리행정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조선시대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일컬어 국초부터 관개(灌漑)를 중심으로 하는 수리행정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1395년(태조 4년)에 권농관(勸農官) 제도를 두어 제언(堤堰) 수축을 독려하고, 1419년(세종 1년)에는 제언대장(堤堰臺帳)을 2부 만들어 비치하였고,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제언사(堤堰司)라는 관청을 창설하여 댐시설의 신설·조사·수리를 관장하였고, 1662년(현종 3년)에는 제언사를 다시 설치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제언 규정인 제언사목(堤堰事目)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으며 1778년(정조 2년)에는 전문과 11조로 되어 있는 제언절목(堤堰節目)을 공포하는 등 조선시대 댐제도면의 치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어 1903년(고종 40년)에 편찬작업이 시작되어 1908년(순종 2년) 신활자로 간행된 바 있는 동국문헌비고(약칭 '문헌비고')에 의하면 1782년에 조사한 전국 제언(댐)총수는 3,378개소에 달 했으며, 각 도별로는 경기도 270개소, 경상도 1,522개소, 전라도 913개소, 충청도 503개소, 평안도 55개소, 황해도 26개소, 함경도 24개소, 강원도 65개소로 댐의 90% 이상이 삼남지방에 몰려 있었던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건교부 수자원관리 참고) 아울러 우리나라 댐의 시초는 벽골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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