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말론 브란도는 1950년 데뷔한 이후 8번 아카데미 상 수상후보에 올라 '워터프론트'와 '대부'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고 그 이후에도 '지옥의 묵시록',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등의 명화에 출연해 많은 팬들을 거느리는 스타 중의 스타로 명성을 굳히며 전설적인 대 배우로 추앙을 받게 된다.
그러나 말론 브란도가 처음부터 화려한 인생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도 적지 않은 시련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정신적인 이유로 적지 않은 고통을 받아야 했다.
말론 브란도의 생애
브란도는 1924년 미국 네브라스카 출신이며, 본명은 말론 브란도 주니어이다. 그의 가정은 그리 단란치 못했는데 특히 그의 아버지는 주벽이 심해 가족들을 매우 불편하게 했다고 한다.
그 영향 때문인지 그는 원만하지 못한 성격을 갖게 되어 육군사관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그 후, 방황하는 그를 보고 격분한 그의 아버지가 좀더 가치있는 일을 해보라는 충고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브란도가 연기에 입문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1943년 보비노에서 연기자로 데뷔 공연을 한 후, 1946년 브로드웨이 데뷔작 '아이 리멤버 마마: I Remember Mama'으로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기대되는 신인배우라는 격찬을 받았으며, 이듬해 공연한 테네시 윌리암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1947)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게 된다.
이 작품 이후 브란도가 선택한 영화 데뷔작은 '더 멘: The Men'(1950). 브란도는 이 작품에서 하반신 불수의 전쟁 피해자를 연기했고, 현실성 높은 연기를 위해 실제 퇴역병사의 병실에서 한달 가까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듬해엔 엘리야 카잔과 다시 힘을 합쳐 영화화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 후, 여러 작품에서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여 준 브란도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 'The Fugitive Kind'등 출연작마다 실패를 거듭하는 시련에 시달리게 된다.
1972년,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 고통받던 브란도에게 행운이 찾아온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The Godfather'(1972)은 그에게 두 번째 오스카상을 안겨주고 그를 완벽하게 재기시켰다. 브란도는 이후 영화출연을 자제하고 직접 제작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 불행은 또 다시 그를 찾아왔다. 그의 첫아들이 누이동생을 임신시켰다는 이유로 그녀의 남자친구를 살해했다. 그 이후 그 누이동생도 곧 자살하면서 브란도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브란도는 아들의 변론을 위해 상당한 돈을 써야 했고 그로 인한 재정적 곤경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그 이후 나온 작품들이 '콜럼버스: The Discovery'(1992), '돈 쥬앙: Don Juan DeMarco'(1995), '닥터 모로의 DNA: The Island of Dr. Moreau'(1996)등이 고, 최근에는 도날드 서덜랜드, 미라 소르비노, 마틴 쉰, 찰리 쉰등과 함께 '프리 머니 Free Money'에 출연했다.
말론 브란도의 대표작
말론 브란도의 주요 출연작은 다음과 같다.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Apocalypse Now Redux) 2001
스코어(The Score) 2001
프리 머니(Free Money) 2000
브레이브(The Brave) 1997
닥터 모로의 DNA(The Island of Dr. Moreau ) 1996
조니 뎁의 돈 쥬앙(Don Juan DeMarco) 1995
콜롬버스(Christopher Columbus: The Discovery ) 1992
회상, 지옥의 묵시록(Hearts of Darkness) 1991
말론 브란도의 프레쉬맨(The Freshman) 1990
백색의 계절(A Dry White Season) 1989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9
슈퍼맨(Superman) 1978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Last Tango In Paris) 1972
대부(The Godfather) 1972
대부 (재출시)(The Godfather) 1972
말론 브란도의 번!(Queimada) 1969
체이스(The Chase) 1966
바운티호의 반란(Mutiny on the Bounty) 1962
애꾸눈 잭(One-Eyed Jacks) 1961
영 라이언(The Young Lions) 1958
아가씨와 건달들(Guys and Dolls) 1955
워터 프론트(On the Waterfront) 1954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 1951
이 가운데 말론 브란도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과 그에게 두 번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 준 '워터 프론트'와 '대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말론 브란도는 미군을 탈영해 캄보디아인들의 마을에서 신으로 군림하고 살아가는 '커츠 대령'을 연기하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가 탈영병을 소재의 일부로 다루고 있다는 이유로 89년에서야 한국에서 상영될 수 있었다는 것.
말론 브란도가 연기한 커츠 대령은 미군 그린베레 출신으로 미군 최고의 엘리트이지만 월남전을 치르면서 서서히 정신분열상태에 빠져들고 급기야는 미군을 버리고 캄보디아의 정글로 들어간다.
한편 미군은 커츠 대령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고 그래서 윌라드 대위와 몇몇 병사들은 배를 타고 커츠 대령이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 영화는 커츠 대령을 제거하기 위해 윌라드 대위가 이동하는 동안 겪는 경험을 전하면서 월남전에 대한 코폴라 감독의 차가운 냉소적 비판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워터 프론트는 거대한 폭력 조직과 부패한 공무원의 결탁 속에 신음하는 부두 노동자의 고달픈 생을 그린 작품이다. 말론 브란도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8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거장 엘리아 카잔이 메가폰을 잡았다.
한 청년의 죽음과 이에 관련이 있는 건달 ‘테리’ 그리고 오빠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려는 여동생 ‘이디’ 또 노동자의 양심을 일깨우려고 노력하는 ‘배리’ 신부가 엮어 가는 이야기이다.
한편 갱스터 영화 가운데 최고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대부'에서 말론 브란도는 주인공 '돈 비토 콜레오네' 역을 맡아 열연한다. 주인공 '돈'은 마피아의 두목으로 범죄자이지만 권력과 지력, 마피아 나름대로의 원칙을 갖고 조직을 운영하기 때문에 '대부'라고 불리고 있다.
이 영화에서 말론 브란도는 특유의 카리스마 있는 풍모로 '대부' 역을 인상깊게 소화해 전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말론 브란도의 파란만장한 80년 인생
말론 브란도의 80년 인생을 지켜보면 그의 인생 역시 마치 영화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육군사관학교에서 퇴학당해 사회 밑바닥 인생을 살던 그가 연기를 시작해 성공하고 연기 생활 중의 슬럼프를 '대부' 출연으로 극복한 다음 전성기를 누리다 말년의 불운과 싸우게 되는 그의 인생은 한 편의 파란만장한 인간의 생을 담은 영화를 연상케 한다.
말론 브란도는 영화사에 배우로서 큰 업적을 남긴 것 외에도 인권 운동가로서 미국 내 인디언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기도 했다.
말론 브란도의 80년 인생은 곧 미국 영화 전성기였으며 그의 연기와 작품을 살펴보면 미국 영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영화산업이 앞으로 더욱 각광받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 있으며 한국 영화의 꾸준한 성장으로 스크린쿼터의 축소 내지는 폐지가 논의되고 있는 이때에 말론 브란도의 인생은 한국 영화의 더욱 큰 성장과 번영을 이끌어 내려는 영화인들의 가슴속에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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