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돈과 현대판 '장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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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돈과 현대판 '장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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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정말 행복한가, 차 떼기 검은 돈과 굶주려서 빵을 훔치는 양면성을 보면서

아담 스미스는 물질적 풍요가 지속되면 반드시 심각한 심리적, 정신적 문제에 빠지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부의 무절제한 추구가 부패로 연결되기 때문이며, 그와 같은 것은 결국 삶의 궁극적인 의미상실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핵심요소까지 앗아가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한 점을 인정하고 보면 우리는 지금 정말로 행복한지를 묻게 된다. 정치 지도자들이 차 떼기로 검은 돈을 받고, 여학생이 굶주리다 못해서 빵을 훔치는 일을 보면서 말이다. 한쪽은 일하지 않고 권력과 부를 얻고, 다른 한쪽은 그 반대의 사회가 오늘의 우리 현실이라고 보면 그 대답은 노가 된다.

시장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이유가 경쟁의 압박에서도 오지만 우리가 자신의 행동에 가하는 자제력 때문으로도 생기며, 신뢰는 내면의 자상(自像)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할 때 싹틀 수 있으며, 그러할 때에 시장은 더욱 능률적으로 작용한다. 신뢰가 없으면 시장이라는 경제장치는 연료가 떨어져 몹시 흔들리며 삐거덕거리게 된다.

또한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많은 것들이 산업혁명의 여명기에 요구되었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보면 사람들의 행복이란 평온한 가운데 존재한다. 건강하게 살고, 남에게 갚아야 할 빚도 없으며, 명석한 의지를 소유한자가 지닌 행복이 최선임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이러한 점을 두루 갖춘 사람에게는 오히려 '부의 증대'가 불필요하다.

그러한 점을 인정하고 보면 오두막집이 아니라 호화로운 저택에 사는 것이 편안하고 잠도 깊게 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모순에 빠지게 되며 실제로 현실 상황도 그러한 점이 많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로 정의로운 사회가 이루어져야 튼튼한 국가 된다. 그런데 오늘날 그러한 면에서 다소 회의를 갖게 하는 면들이 많아서 안타깝다. 보통사람들인 서민들이 그러한 점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할지는 뻔하다. 아마도 대개는 살아갈 의욕마저도 잃을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지금도 그들은 나는 아니고 네 탓만을 주장하는 아귀다툼으로 민생을 돌보는 일에 소홀히 하고 있다. 튼튼한 대들보가 거대한 건축물을 떠받치는 힘이 되는 것처럼 국가 역시 그러하다. 어떤 국가가 혼탁해져서 대들보가 약해지면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 질 수밖에 없다.

또한 부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 국가에는 반드시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부유한 국가일수록 정부가 나서서 국민들의 불평등과 고통을 우선적으로 보호해 주어야 할 의무가 존재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혼란이 일어나고 심화되면 폭동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런 것을 미리 알고 행동하는 지도자들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국가의 공공사업이나 공공시설에 대한 투자가 사회에 가져다주는 이익은 대단히 크다. 비록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수익이 국민 개개인이나 소집단에게 직접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것은 많은 도움을 주게 되며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남으로서 실업이 줄어든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렇지 못해서 청년실업자가 늘고 아버지는 일하며 아들은 놀고 있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국가의 부가 지속적으로 창출되려면 선결조건으로 부자와 가난한자들이 똑같이 보호받는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가 제일 먼저 정의구현이 가능한 기반을 수립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공공시설과 교육분야 같이 당장 높은 수익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전체사회와 비즈니스에 궁극적으로 이익을 가져다주는 많은 분야에 투자를 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위정자들은 그러한 면을 외면한 채 당리당략에만 몰두하는 정치상황을 보게 되어서 안타깝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행복이 내면의 성장과 변화에서 그리고 각자의 주어진 도덕적 상상력을 통해서 성취되는 타인과의 더 나은 관계에서 시작된다고 보고 이것이 마음의 평화와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소유가 아닌 존재가 그 해답이다. 그것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행동방식 생활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와 명예를 위한 경주에서는 무수한 경쟁자들을 앞지르기 위해 모든 노력과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려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경쟁자들을 밀어 틀리면 관중의 참을성은 완전히 바닥이 나게 된다. 다시 말해서 공정한 경기의 법칙을 위반하면 관중은 그것을 묵과할 수 없게 되고 증오와 분노의 대상이 된다.

누구는 열심히 일해도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는데 어떤 사람이 그 반대라고 하고도 모든 것을 얻는다면 그 사회는 불평등이 생기고 사회가 혼탁해지게 된다. 하물며 수 십억 원씩이나 되는 돈을 받아서 챙기고 매스컴에 나와서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지는 자명한 일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기만적이고 경솔한 외형만을 가지고 살고 있다. 덕이 없는 명예와 지혜가 없는 이성, 행복이 없는 쾌락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관대한 사람들은 항상 자기의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타인에게 더 큰 이익을 주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것은 밀턴 프리드먼이 주장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주주를 위해 최대의 이윤을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과 다소 상위한 이야기가 되기는 하다. 사업가는 신뢰가 거래비용과 위험을 줄여주기 때문에 자신의 사업을 좁은 지역에 한정시키려는 경향이 있게 되는데 이것 역시 넓은 의미로 보면 이기주의를 수반하는 일이 된다.

사람들이 부와 권세가 하찮은 효용을 지닌 자질구레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늙어가면서다. 육체는 고통과 질병으로 쇠약해지고, 그간에 겪는 수많은 마음의 상처와 실망이 기억으로 되살아나며,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지면 그때서야 알게 된다. 하지만 선각자들은 그것을 남보다 먼저 알고 행동한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선각자들이 없어 보인다.

최고학부를 다니는 한 여학생이 현대판 장발장 죄를 저지른 것을 보고 그냥 웃어넘기기엔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다. 볼테르 베르는 정의에 대하여 '결백한 사람에게 죄를 씨우는 것보다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죄인을 구해주는 것이 낫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이 요즘 가슴속에 와 닿는 것이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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