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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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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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131> 박인환 특집'세월이 가면'

 
   
  ^^^▲ 억새
ⓒ 이종찬^^^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아닙니다.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의 이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그토록 사랑했던 그 사람의 빛나는 이마, 긴 머리칼 사이 언뜻언뜻 드러나는 작고 부드러웠던 두 귀, 먹물처럼 까만 눈동자, 깎아 세운듯 오똑했던 코, 또렷하게 패인 인중을 타고 흘러내린 그 흑장미 같은 입술...

"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나는" 결코 그 공원의 그 벤취를 비추던 별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별빛 사이로 희미하게 우리를 비추던 수박등, 늘 우리들을 포근하게 숨겨 주었던 그 등나무 넝쿨, 그리고 우리들이 입 맞추기 좋게 등받이가 적당히 기울어진 그 벤취, 간혹 우리들을 비추던 그 하얀 달빛...

하지만 지금 그 "사람은 가고" 그때 그 순간이 화두처럼 가슴 깊숙히 남아 서늘한 바람이 불 적마다 내 가슴 속에서 실루엣으로 자꾸만 흔들립니다. 단풍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눈에 허깨비가 끼도록 그때 그 촉촉했던 입술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그때 그토록 아름다웠던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길을 가다가 문득, 때 이른 낙엽 한잎이 내 앞에 툭 떨어질 때면 더욱 그대가 그리워집니다. 내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만 보아도 혹 그대가 아닌가 뛰어가서 확인을 하기도 합니다. 그만한 키, 그만한 긴 머리, 그만한 몸매를 가진 사람만 바라보아도 문득 그대로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지금 비록 그 사람은 내 곁을 떠나갔지만, 아니 누가 먼저 떠나가버린 지도 모른 채 그렇게 헤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그 눈동자 입술은" 언제나 "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특히 가을이 오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면 더더욱 "내 서늘한 가슴에" 남아 나의 마음을 마구 흔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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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협 2003-10-06 22:25:39
그렇습니다. 내 서늘한 가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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