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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 대동강변에 전시되고 있는 푸에블로호. 푸에블로호의 작전 수행 중 북한군의 공격과 나포 시도 등 비상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 통상 유사한 첩보 수집 임무 때 수반되는 긴급 지원과 구조 계획 등도 가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 emilitarynews.tistory.com^^^ | ||
미국은 지난 1968년 미국의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의한 나포 위협이 거의 없을 것으로 판단해 비상지원대책 조차 수립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이 같은 사태는 미국은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되기 전 수년 전부터 동해상에서 해군 정보수집함(선박)을 이용해 대북 정찰활동을 펴왔으나 북한의 위협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 당시 통상적으로 이뤄져온 정보수집함에 대한 비상지원대책이 가동되지 않았다고 미국의 해제된 의회보고용 기밀문서를 입수한 ‘자유아시아방송’이 14일 보도했다.
때문에 푸에블로호는 결국 북한에 억류로 이어졌으며 억류된 지 11개월 만에 선박과 장비를 제외한 승무원 82명이 석방됐었다. 당시 북한에 억류됐던 푸에블로호는 평양 대동강변에 승전의 기념으로 전시됐다.
미국의 푸에블로호 사건이란 지난 1968년 1월 23일 동해의 북한 원산 앞바다 공해상에서 전자 장비를 이용한 정찰활동을 하던 중 북한의 초계함 4척에 의해 나포된 건으로, 당시 북한 해군의 발포로 승무원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결국 그해 12월 23일 11개 월 간의 기나긴 협상 끝에 승무원이 풀려난 건이다.
당시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의해 나포되자 미국의 국무성은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의 즉각 석방을 하도록 옛 소련을 통해 북한과 접촉을 시작했다. 푸에블로호는 경 화물선을 개조한 미 해군 정보 수집 보조함으로 906톤의 무게에, 길이 54m, 폭 10m, 속도 12.2노트 였고 승선인원은 장교 6명, 사병 75명 민간인 2명 총 83명 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전혀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는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초유의 나포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은 일본에서 베트남으로 항해중이던 핵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3척의 구축함의 진로를 바꿔 북한 원산만 앞바다 공해상에서 대기하도록 하고, 전투기 372대의 출동테세를 갖추는 등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았었다.
기밀문서에 따르면,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되기 2년 전인 1966년 3월 14일부터 16일까지 미 해군 정보수집함인 ‘배너호’가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해역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했으며, 또 배너호는 1967년 2월5일부터 7일까지 이틀 동안 역시 같은 해역에서 작전을 폈으며 배너 호의 대북 정보 수집 임무는 같은 해 5월 중순까지 계속됐다.
기밀문서는 미군 당국은 당시 푸에블로호의 작전 중 북한군에 의한 나포 위험을 낮게 평가했으며 그 이유는 북한군이 대북 정찰 활동에 나선 미 해군 정보수집함에 어떠한 위협을 가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푸에블로호가 공해상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가운데 미 해군의 정보수집함이 공해상에서 납치된 적이 없어 사실상 비무장 상태로 정보수집활동을 벌였으며, 게다가 푸에블로호의 작전 수행 중 북한군의 공격과 나포 시도 등 비상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 통상 유사한 첩보 수집 임무 때 수반되는 긴급 지원과 구조 계획 등도 가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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