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운/송은경 기자] 도시는 말로 성장하지 않는다. 기업 역시 구호를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투자와 이전, 확장은 언제나 계산의 결과이며, 그 계산표에는 숫자만큼이나 ‘태도’가 들어간다. 행정이 얼마나 예측 가능한지, 약속한 방향이 유지되는지, 현장의 질문에 어떤 방식으로 답해왔는지 같은 요소들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기업 환경 체감도 조사’에서 안산시가 입지 여건과 행정 지원 분야 모두 전국 상위 10위 안에 올랐다는 결과는, 그래서 단순한 순위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전국 6,800여 개 기업이 응답한 조사에서 두 분야 모두 상위권에 오른 지자체가 손에 꼽힌다는 점은, 안산이 일정한 신뢰를 쌓아왔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 평가는 성과표이기보다 중간 성적표에 가깝다. 안산이라는 도시가 기업을 대하는 방식이 어떤 방향으로 작동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기업 환경을 이야기할 때 안산은 늘 특이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수도권이지만 제조업 비중이 높고, 주거 도시이면서도 국가산업단지를 품고 있다. 이 이중성은 때로는 부담이었고, 때로는 선택지가 됐다.
기업 입장에서 수도권은 인재와 네트워크의 공간이다. 그러나 생산과 확장을 고려하면 높은 비용과 규제가 뒤따른다. 많은 기업이 연구와 본사는 수도권에, 공장은 지방에 두는 이유다. 안산은 이 오래된 공식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시다.
서울과 인천국제공항 접근성, 6도 6철 교통망,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라는 물리적 기반은 ‘굳이 나눌 필요가 없는 구조’를 가능하게 한다. 창업부터 양산까지를 한 도시에서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은 기업에게 명확한 장점이다. 이번 조사에서 입지 여건이 높은 평가를 받은 배경도 여기에 있다.
입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같은 조건을 갖추고도 기업 체감도가 갈리는 이유는 행정의 방식 때문이다. 안산의 특징은 산업 구조를 먼저 만들어 놓고, 행정이 이를 뒤따르며 정리해왔다는 점이다.
산업지원본부를 중심으로 한 기업 지원 체계는 단일 사업이 아니라 흐름에 가깝다. 자금, 기술, 판로, 현장을 따로 떼어 놓지 않고 연결하려는 시도는 행정의 부담을 늘리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중소기업 육성자금 융자와 특례보증, 기술 사업화 지원, 해외 마케팅 지원이 분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구조는 행정 지원을 ‘체감’하게 만드는 요소다. 이번 조사에서 행정 지원 분야가 상위권에 오른 이유 역시 제도 그 자체보다 운영의 축적에서 찾을 수 있다.
안산의 산업 정책을 취재하며 눈에 띄는 점은 연구개발과 현장이 물리적으로, 제도적으로 멀지 않다는 점이다. 한양대 ERICA 캠퍼스를 중심으로 한 강소연구개발특구는 지정 자체보다 활용 방식이 중요하다.
기술 이전과 사업화, 창업 지원이 실제 기업과 연결되지 않으면 특구는 이름에 그치기 마련이다. 안산은 비교적 이 간극을 줄이려는 방향을 선택해 왔다. ‘안산형 강소기업 육성지원 사업’이 기술개발 이후 상용화와 해외 진출까지 정책 범위에 포함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5년 이후 단계적으로 이어져 온 이 사업은 단기간의 성과를 내세우기보다, 특정 산업군을 중심으로 축적을 택했다. 미래 자동차, 로봇, ICT, 바이오·의료 분야에 대한 선택 역시 일관된 방향성으로 읽힌다.
최근 추진 중인 스마트 제조와 인공지능(AI) 기술 도입 지원도 기존 제조 기반을 부정하지 않는 확장 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새로운 산업을 불러오기보다, 이미 있는 산업을 다음 단계로 올리는 선택이다.
기업 환경 체감도는 설문으로 집계되지만, 그 답은 현장에서 만들어진다. 안산이 꾸준히 운영해온 기업 SOS 지원단, 이동 시장실, 기업 현장 기동반은 제도보다 태도의 문제다.
기업의 애로 사항은 대개 복합적이다. 인허가 하나가 교통, 환경, 근로 문제와 얽혀 있는 경우도 많다. 이때 행정이 얼마나 빠르게 연결되고, 책임 있게 정리되는지가 체감도를 좌우한다.
안산의 경우 부서 간 협업과 유관 기관 연계를 통해 단순 상담을 넘어 실제 개선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누적돼 왔다. 이번 조사 결과는 그 축적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안산사이언스밸리(ASV) 지구의 경기경제자유구역 지정은 이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이미 산학연 클러스터가 형성된 공간에 법적·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경제자유구역 지정으로 제공되는 각종 인센티브와 규제 특례는 기업 유치의 조건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 물론 투자 규모와 고용 창출 효과는 시간이 지나야 검증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 가능한 구조’를 갖췄다는 사실이다.
이번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는 안산이 기업 환경 측면에서 어디쯤 와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기자수첩의 관점에서 더 중요하게 보이는 것은 태도다. 입지를 관리하고, 산업을 키우고, 행정을 조율해온 방향성이 일정하게 유지돼 왔다는 점이다.
기업은 도시의 선언보다 경험을 기억한다. 안산이 이번 조사에서 받은 평가는, 그 경험이 누적된 결과다. 이제 과제는 이 흐름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다. 성과를 홍보하는 도시가 아니라, 신뢰를 유지하는 도시로 남을 수 있는지가 다음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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