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카틴 학살은 1940년 봄, 이오시프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소련 비밀경찰 NKVD가 자행한 사건으로, 1939년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초기 폴란드의 분할과 점령 과정에서 폴란드 장교, 국경수비대, 경찰, 지식인 등 약 2만 2천 명이 살해됐다./로이터
눈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세계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깜짝 놀란 수준을 넘어 몸서리치는 나라가 있었다. 그들은 지난 과거를 떠올리고 공포에 젖어 온몸에 돋는 소름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바로 폴란드다. 러시아 침공 이후 폴란드가 거액을 들여 무기를 급하게 구입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도 한의 민족, 눈물의 백성이라고 한 이름하지만, 눈물에 젖은 빵을 먹었던 이야기에 대해서는 우리도 명함을 못 내미는 나라가 폴란드다. 폴란드는 우리처럼 강대국에 끼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걸핏하면 지도에서 나라가 사라지고 걸핏하면 국민이 대학살을 당하는 등,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폴란드 역사였다.
우리 민족도 가련했지만, 가련했던 우리 민족의 한 시인은 우리보다 더 가련했던 폴란드를 생각하며 한 편의 시 한 구절에 폴란드를 넣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1940년에 발표된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의 한 구절이다. 도룬 시는 폴란드 서부에 위치한 도시 토룬을 말하고, 1940년 토룬 시는 나치 독일에 점령되어 폴란드 문화가 말살되고 강제수용소에서 폴란드인들이 죽어 나가던 시기였다.
폴란드가 역사에 등장한 것은 고려시대인 966년이었다. 폴란드 지역의 지도자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폴란드는 유럽 세계에 명함을 내밀게 된다.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받아 강화도에서 농성하고 있을 때, 폴란드 역시도 몽골의 침입에 맞서 싸우면서 폴란드군이 레그니차 전투에서 전멸을 당하고 있었다. 고려와 폴란드는 몽골 제국의 동서 양쪽 끄트머리 지경에 있었다.
폴란드의 역사
16세기에는 폴란드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당시 아우구투스왕이 후계자 없이 사망해 버렸다. 이웃에는 리투아니아가 있었는데 두 나라 모두 외세의 간섭과 러시아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던 터라 폴란드의 공주와 리투아니아의 왕자와의 결혼을 통해 연합을 시도한다. 그래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이라는 거대 국가가 탄생한다. 동유럽의 '찐따'였던 두 국가가 동유럽의 '일찐'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영화나 게임에 단골로 등장하는 기마 부대가 있다. 등에 커다란 깃털을 꼽고 기다란 장창을 든 채 평원을 달리던 '윙드 후사르'가 바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정예 기마 부대였다. 기마 돌격할 때 깃털 부딪히는 소리만으로 적을 공포에 떨게 했던 윙드 후사르는 역사상 최강의 무적 기병 중 하나로 꼽히고, 폴란드인의 자부심 또한 우리의 거북선만큼이나 대단하다.
유럽에 전쟁이 터질 경우, 폴란드는 출입문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폴란드는 대부분이 평야였다. 방어에 쓸만한 고지도 없었다. 17~18세기에 폴란드는 신성로마제국, 러시아, 합스부르크, 오스만투르크, 오스트리아 제국, 프로이센 등 세계 역사를 호령했던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17세기 중후반 들어 이 연합 국가에 '대홍수'가 발생했다. 실제의 홍수가 아니라 사방에서 외적이 쳐들어오는 상황을 빗댄 실존하는 역사적 용어다.
이 연합 국가는 1772년부터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가 3번에 걸친 뜯어먹기 영토 분할로 1795년 지도에서 사라졌다. 나폴레옹이 등장하여 잠시 바르샤바 공국이 잠시 살아나지만, 나폴레옹의 멸망과 함께 다시 사라진다. 이번에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점령국이 패전하면서 1918년에 폴란드는 다시 회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독일의 히틀러와 소련의 스탈린이 폴란드를 나눠 먹으며 폴란드는 다시 사라졌다. 히틀러가 패전하고 다시 회생했지만, 이번에는 스탈린의 탱크가 밀고 들어와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했다.
폴란드의 비극
히틀러와 스탈린이 폴란드를 양분했을 때 스탈린은 폴란드 지식인들을 대거 숙청했다. 나치 독일이 소련으로 진군할 때 스몰렌스크 부근 카틴 숲에서 대량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이들은 소련군이 학살한 폴란드군 장교, 사병, 경찰, 교사, 사제, 등 폴란드의 지식인들이었다. 이것은 '카틴 학살'로 불린다. 2차대전 중 폴란드의 인명 피해는 600만이 넘었다.
유대인들을 수용소 가스실로 보냈던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남부에 있었다. 가스실의 비극은 유대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스라엘이 피해자로 비치지만 폴란드도 거대한 피해자였다. 홀로코스트로 학살된 유대인 600만 명 중에 절반은 폴란드인이었다. 폴란드의 관대한 정책이 많은 유대인을 폴란드로 불러 모았고, 그래서 나치의 유대인 포로수용소는 폴란드에 가장 많이 몰려 있었다.
2차대전 당시 김구의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탁상공론하고 있을 때 폴란드 망명 정부는 런던에 있었다. 폴란드를 점령했던 독일군이 서쪽으로 밀려나면서 이번에는 동쪽에서 소련군이 폴란드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러자 폴란드 저항 세력은 소련군이 오기 전에 폴란드를 탈환하고자 '바르샤바 봉기'를 일으킨다. 폴란드 국내에 있는 모든 정파, 남녀노소가 참전했다. 외부의 도움은 전혀 없었다. 폴란드 시민군은 세계 최강 독일군과 63일 동안 격렬한 전투를 치르며 스러져 간다. 세계 역사는 이 봉기를 가장 치열했던 저항 운동이었다고 평한다.
바르샤바 봉기는 2015년에 영화화되었다. '바르샤바 1944'라는 영화이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꼭 보기를 강추한다. 특히 핵을 만들어주고도 평화라고 우기는 대한민국의 자칭 진보라면 더더욱 감상하길 권한다. 그리고 바르샤바 봉기는 1943년에 일어난 '바르샤바 게토 봉기'와는 다르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는 바르샤바 게토 봉기가 배경이다. 영화 포스터의 황폐하고 무너진 거리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의 풍경이다. 이 영화도 볼만한 영화다.
폴란드의 부흥
폴란드인 중 유명인은 코페르니쿠스와 퀴리 부인, 쇼팽, 요한 바오로 2세 등이 있다. 1990년 12월에는 유명한 자유노조 지도자 레흐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폴란드는 다시 한번 역사의 변곡점을 맞았다. 폴란드는 평화적으로 소련의 굴레에서 벗어났고, 이 민주화 바람은 동유럽의 다른 소련 위성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바웬사의 자유노조가 우리의 민노총과는 반대 방향으로, 공산당과의 투쟁의 길을 걸었던 것은 폴란드에게는 축복이었다. 1989년의 민주화 이후 폴란드는 경제 자유화를 추진했고, 지난 20년간 폴란드는 유럽연합 평균의 2~3배에 달하는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한국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할 충분한 자금을 축적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폴란드가 구매한 무기는 k-9자주포, 흑표 전차, 경공격기 등 무려 17조 원에 달한다. 아마 폴란드는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다음에는 자기 차례가 된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을. 그것은 폴란드의 역사가 폴란드 국민의 뇌리에 깊이 새겨준 각인이다.
실제로 국제 정치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베네수엘라 사태가 미, 러에 의해 하나씩 교환 되었다. 그런데 미국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미국은 그린란드와 이란을 원하고 있다. 미국이 그린란드를 차지할 경우, 덩달아 러시아도 하나를 더 원할 것이다. 그 유력한 후보지는 바로 폴란드다. 폴란드도 느끼고 있는 사실이다.
세계 인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폴란드는 1940년의 폴란드가 아니다. 경제는 부흥하고 있고, 덩치는 영, 프, 독에 비해 뒤질 바도 아니다. 폴란드는 돈을 벌고 있고 그 돈으로 계속 무기를 구입하고 있다.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면 폴란드는 영프독플이라는 유럽의 4대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고, 공산주의의 파도로부터 유럽을 지켜주는 든든한 제방이 될 수 있다. 세계 평화가 폴란드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끄트머리에서 서쪽 끄트머리로 뜨거운 응원을 보내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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