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야기: 난민 시절 예수님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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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야기: 난민 시절 예수님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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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용할 수 없는 고통 속의 예수 / sns 

<<이 글은 미국 미시간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캐리 러브(Kary Love)가 미국의 진보 매체인 카운터 펀치25(현지시간) 게재한 글을 옮겨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고요한 밤이었고, 모든 것이 평온하고 밝았지만, 크리스마스 이야기의 배경은 크리스마스의 교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했다. 이 배경은 예수님께서 왜 그러한 가르침을 주셨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당시에는 혼란과 반역, 내전 직전의 상황이었고, 가짜 뉴스, 거짓 선지자, 악랄한 왕들, 탐욕스러운 부자들, 그리고 물론 권력자들과 정부에 의해 학대받고 조롱당하고 투옥되는 수많은 가난하고 집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양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는 예루살렘 근처 유대 지방의 베들레헴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었다. 이곳은 그들의 고향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방에서 온 몇몇 현자들이 악한 헤롯 왕을 경배하기 위해 찾아왔는데, 그들은 하늘에 나타난 밝은 별을 통해 곧 새로운 왕이 탄생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

당대의 천문학자였던 동방 박사들은 예수를 그 구원자로 지목했다. 공포와 폭력, 그리고 혐오스러운 개인적 행태를 바탕으로 악랄한 통치를 펼치는 헤롯은 갓난아기 예수조차도 두려워했다. 백성들이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헤롯의 사치스럽고 방탕한 삶은 그가 다스리고 세금을 걷어 자신의 과도한 사치스러운 생활을 유지하도록 강요하는 대다수 백성들의 고되고 힘겨운 삶과 극명한 대조를 이르었다.

헤롯은 모든 법(특히 하느님의 법)을 초월하여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 (한국에서도 모 목사가 그런 행위를 했고 지금도 그는 활보하고 있다). 그는 하늘이 선포한 새로운 왕이 자신의 통치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의 백성 중 많은 이들이 하느님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믿고 있었고, 하느님은 종종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나오는 음성이나 바다가 갈라져 피난민들이 지나갈 수 있게 해주고 추격하는 군대를 막아내는 것과 같은 특이한 자연 현상을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라는 새로운 왕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헤롯은 군대에게 베들레헴과 그 주변 지역 주민들을 선제공격하라고 명령한다. 헤롯은 두 살 미만의 모든 남자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무고한 아이들의 학살로 알려진 만행이다(마태복음 2:16-18).

요셉은 꿈이나 환상 속에서 헤롯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한다는 신비로운 메시지를 받는다. 요셉은 예수를 데리고 고국을 떠나 이집트로 피신한다. 이집트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였지만, 그들은 비록 시민권자는 아니었지만 안전하게 살 수 있었다.

헤롯이 죽은 후에야 요셉과 마리아는 드디어 돌아올 수 있었고, 유대 지방을 피했다. 이는 헤롯의 후계자들이 그의 예수를 계속 찾을 경우 신원이 노출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요셉은 나사렛에 가기를 두려워했다”(마태복음 2:22). 이는 현명한 처사였다. 헤롯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인데, 이는 세습 왕권의 폐해에 대한 초기 경고였다. 그들은 베들레헴에서 멀리 떨어진 갈릴리 나사렛에 새로운 피난처를 찾았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어린 시절은 타지에서 난민 생활을 하다가 가족의 원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이재민으로 살게 되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자세히 기록된 예수 탄생 이야기는 로마 인구 조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던 상황에서 베들레헴의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예수가 동정녀로 태어났음을 보여준다. 예수는 구유에 누워 목자들의 방문을 받았으며, 이는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성경 예언을 성취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시절은 결코 평온하거나 밝지 않았다. 쫓기고 멸시받고 난민 신세였던 예수님은 무법천지 왕국에서 아무런 권리도 법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 목수의 견습생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목수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면서 예수님은 세상의 소금과 같은 사람들과 어울렸다.

부모님처럼 가난하고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친구이자 이웃이었고, 스승이자 본보기였다. 예수님은 헤롯 왕가의 하수인들이 마을 사람들을 학대하고, 투옥하고, 고문하고, 심지어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 어린아이들이나 임산부조차도 예외 없이 무참히 살해당했지만,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예수님은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에게는 다른 법이,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법이 적용되는 세상에서 살았다. 예수님은 무의미한 폭력과 학대를 목격하며 성장했고, “의 법정에서는 아무런 구제책도, 정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이러한 경험이 예수님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폭력과 살인을 혐오하는 마음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2025년 크리스마스가 왔다. 한때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큰 소리로 제기되었던 질문,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가 떠오른다. 물론 예수님의 삶의 모범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용기이다.

폭력과 야만이 판치는 궁핍한 환경에서 태어나, 명백한 악과 특권층의 비참한 과시, 정부의 하수인들과 군대의 폭력에 맞서 싸우신 예수님의 용기이다. 비폭력적이고, 배려심 많고, 사려 깊고, 품위 있고, 치유하는 예수님의 용기는 오늘날 전사 정신”(warrior ethos)이라는 이름으로 선전되고, 미국의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난민들을 학살하는 데 이용되는 거짓되고 나약한 용기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예수님은 난민이었고, 이재민으로 살기도 했다.

고요하고 밝은 별들이 부르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이야기인가? 오늘날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른다면, 다시 한번 그런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이 거룩한 계절에 예수님의 용기가 여러분의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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