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경 대령에 대한 4.3학살의 증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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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경 대령에 대한 4.3학살의 증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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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경 연대장이 학살을 벌였다는 사료도 없고,
박진경에게 살해되었다는 유족의 증언도 없다.
박진경 연대장은 제주 부임 43일 만에 암살되었고
부임 4일 만에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의 암살 계획이 수립되었다.
1950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박진경 대령이 받은 을지무공훈장증/김덕영 감독 SNS
1950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박진경 대령이 받은 을지무공훈장증/김덕영 감독 SNS

 박진경 대령은 건국의 동량

박진경 대령은 2025년 10월에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두 달도 되기 전에 이재명 대통령은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등록취소'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남한 좌익들이 드세게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박진경 연대장이 제주4.3폭동 당시 강경 진압에 나선 학살자라는 이유였다.

박진경 중령은 1948년 5월 6일 제주4.3폭동 당시 진압군으로 출동했던 9연대장으로 제주에 부임했다. 그리고 동년 6월 18일 박진경 연대장은 남로당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 부하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박진경 연대장이 제주4.3에서 활동한 것은 정확하게 43일뿐이었다.

박진경 중령이 제주로 발령이 난 것은 전임 9연대장 김익렬 중령이 4.3폭동 진압에 미적거렸기 때문이었다. 김익렬은 4.3폭동이 경찰과 남로당이 대립한 치안사건으로 치부하며 수수방관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것은 폭도 측과 김익렬의 내통 때문이었다.

김익렬은 폭도들과 접촉하며 휴전과 평화를 빌미로 폭도사령관인 김달삼과 무단으로 면담을 진행하였다. 김익렬의 9연대는 경찰과는 적대적이었으며 폭도들에게는 우호적이었고 폭도들에게 무기를 선물하는 등 김익렬의 색깔은 불분명했고, 진압에는 미온적이었다. 결국 하극상 사건으로 김익렬은 9연대장에서 해임되면서 박진경 중령이 제주4.3 진압의 바톤을 이어받았다.

 

박진경 대령의 학살 증거는 전무

박진경 연대장이 부대를 정비하고 작전 활동에 나선 것은 5월 30일부터였다. 이때에도 민간인이 거주하는 해안 지역은 경찰이 담당하고, 9연대가 담당한 작전 지역은 폭도들의 무대인 중산간 지역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진압 작전은 제주도 5·10선거가 무효화 된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미군 자료는 밝히고 있다. 제주4.3사건은 만 9년 만에 종료되었다. 만 9년의 기간 중 박진경 연대장이 본격 진압으로 활약한 기간은 며칠 정도였다. 그것도 민간인이 거의 없는 산악 지역이 작전 지역이었다.

그런데 박진경 연대장이 학살자라니, 그것도 그렇게 짧은 기간에 학살을 벌였다니. 근거도 부족하고 증거도 없다. 민간인이 없는 산악 지역에서 민간인 학살이 발생할 수 없다. 있었다면 그건 민간인이 아니라 인민해방군일 가능성이 높다. 박진경 연대장이 학살을 벌였다는 사료도 없고, 박진경에게 살해되었다는 유족의 증언도 없다. 다만 9연대의 진압 작전과 좌익의 선동만이 있었다.

박진경 대령에 대해 학살자라고 주장했던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박진경 연대장의 암살범 9명 중 박진경 연대장에게 방아쇠를 당겼던 손선호 하사였다. 손선호는 사형 언도를 받고 최후 진술 중에 박진경 연대장이 '제주도에 휘발유를 뿌려 30만 도민을 몰살시키라"고 주장했기에 암살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엄연한 거짓말이다.

손선호는 남로당의 지령을 받고 박진경 임살에 나섰던 남로당 프락치였다. 손선호는 자기의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당연히 이런 선동적인 주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손선호 주장대로 치더라도 박진경은 학살을 선동했을 뿐, 학살을 시행한 것은 아니었다. 남한 좌익들은 남로당 빨갱이 암살범의 '카더라' 발언 하나를 근거로 박진경을 학살범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엄연한 선동이고 역사 왜곡이다.

 

선동의 달인들

'제주도에 휘발유를 뿌려 30만 도민을 몰살시켜라' 이 주장은 4.3빨갱이들의 단골 메뉴였다. 이런 주장을 했다고 좌익들에게 지목받은 사람은 박진경만이 아니라 전부 세 사람이었다. 이승만, 조병옥, 박진경이 그들이다. 이승만은 4.3진압 당시 대통령이었고, 조병옥과 박진경은 4.3진압의 최전선에 서있던 사람들이다. 좌익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휘발유 학살 선동자의 딱지를 붙였다.

4.3 폭도 두령 중에 김봉현이란 자가 있다. 김봉현은 폭도 대장을 하다가 일본으로 도망가 '제주도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를 썼다. 흡사 공산당 삐라와 같은 책에서 김봉현은 당시 우익 인사들에 대한 저주를 쏟아내면서 걸핏하면 '휘발유 학살'을 선동하는 것이 나타난다. 이 책에서만도 휘발유 학살자로 지목받은 사람은 두 사람이다.

첫 번째 등장은 경무부장(경찰청장) 조병옥이다. "제주도 전도에 휘발유를 뿌려 거기에 불을 질러 30만 도민을 전부 소멸케 해야 한다." 이 선동은 단어를 조금 바꿔 박진경에게도 인용한다. 박진경의 말했다는 내용은 이렇다. "한라산 일대에 휘발유를 뿌리고 방화하며, 항공기로부터 소이탄을 투하하여 제주 빨갱이들을 몰살할 수 있다.“

어느 책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휘발유 학살 발언자로 지목되고 있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휘발유 학살 선동은 4.3당시 남로당이 제주도민을 폭동에 끌어들이기 위해 도민 선동용으로 만들어낸 프로파간다의 단골 메뉴로 추정된다. 그러다 보니 휘발유 학살 선동 표현이 좌익들의 저서 여기저기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소설에까지 등장했을까. 좌익 소설가 한강은 공산당 선전을 베낀 것 같은 그의 4.3소설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이 외에도 인터넷에 떠도는 것들 중에는 이런 표현들도 있다.

이승만 "제주놈들은 모조리 죽이시오." 신성모 "제주도의 40만 도민이 없어지더라도 대한민국의 존립에는 아무렇지도 않다." 신성모는 1949년 3월부터 51년 5월까지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제주도민 몰살 발언자로 한강은 미군정을 지목했지만, 김봉현이 지목한 사람은 세 사람 외에도 유해진 도지사, 신성모 국방장관, 미군정 로버트 등이 제주도민을 몰살시키라고 주장했다고 지목했다. 이 얼마나 학살범의 범람인가. 남로당 빨갱이의 발언 하나로 대한민국의 건국 공로자를 모독하는 김일성의 간첩 같은 주장은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2013년 6월 17일, 2013년 6월 17일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국회 법사위 질의에 이런 발언을 했다. “나는 86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을 했고, 그 시절 총학생회는 전두환 씨가 광주에서 2000명을 죽이고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을 때 죽음을 각오하고 움직였다.” 그러나 팩트는 전두환은 5.18 당시 광주에 간 적이 없었고, 518의 사망자는 수천 명이 아니라 164명이었다. 박진경 암살범 손선호와 민주당 서영교의 마타도어는 비슷하지 않은가.

 

박진경 암살 계획은 부임 4일 만에 수립

1948년 5월 10일, 제주도에서는 남로당 대책회의가 열렸다. 남로당 중앙당에서 급파된 오르그(조직책)와 김달삼, 남로당 프락치이자 김익렬의 부관이었던 오일균 대대장 등 5명이 모인 비밀회담 결과, 프락치 지휘권 문제, 진압 작전 사보타주 등과 함께 박진경 연대장을 암살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박진경이 제주도로 부임한 지 4일 만에 암살이 결정된 것이었다.

위 자료는 제주인민유격대 측에서 작성한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이 투쟁보고서는 제주인민유격대가 직접 작성한 유일한 문서로, 폭도 사령관 김달삼이 월북하면서 들고 간 문서다. 박진경은 5월 6일 제주에 부임했고, 제주의 공산폭도들은 5월 10일 암살 계획을 세운 것이다. 박진경의 암살은 강경 진압이나 학살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박진경 연대장의 강경 진압 때문에 암살했다는 좌익 측 주장은 순전히 거짓말이었다. 부임한 지 4일이라는 시간은 부대 현황 파악도 어려운 시간이었다. 암살의 이유는 결국 이것이었다. 김익렬은 김달삼의 공작에 넘어가 진압에 나서지 않았고, 박진경은 폭도들의 공작에 불응하여 진압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제주4.3폭동의 인명 피해는 대부분 1948년 10월부터 1949년 1월 사이에 가장 많이 발생했다. 이 시기에 대한민국과 북조선이 건국되면서 제주도의 공산 빨치산들도 사기가 올랐고, 대한민국은 제주4.3의 여파로 여순반란사건이 발발하는 등 정국 안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에 강경 진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4.3의 진정한 강경 진압은 이 시기에 발생했다.

 

대한민국에 대한 마타도어

그런데 왜 남한 좌익들은 박진경 대령이 강경 진압을 했고, 학살자라고 선동하는 것일까. 특별한 이유는 없다. 상기하다시피 학살자 딱지는 박진경뿐만 아니라 이승만, 조병옥, 신성모, 미군정 등등에도 학살자 딱지를 붙여 제주도민을 전부 몰살시키라 했다고 선동하고 있다. 이 주장의 근원지는 4.3폭도대장 출신인 김봉현에서부터 출발한다.

김봉현의 저서는 80년대에 국내로 밀수입되어 운동권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제민일보에서 장기 연재했던 ‘4.3은 말한다’도 김봉현 저서의 영향을 받았고 그래서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리고 4.3의 좌경화는 ‘4.3은 말한다’에서 다시 노무현 정권의 ‘제주4.3정부보고서’로 이어지면서 4.3정부보고서는 김일성의 주장을 보는 듯한 붉은 보고서가 되었다.

4.3의 좌경화는 저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좌경화와 더불어 같이 진행된 것이다. 종북 운동권 출신들이 권력의 핵심에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은 더욱 붉게 물들어가는 중이며, 어떨 때는 여기가 한국인지 평양인지 헷갈릴 정도로 대한민국의 좌경화, 종북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건국의 동량이었던 박진경이 학살범으로 매도당하는 것은 그만큼 나라가 좌경화 진도가 나갔다는 증거다. 건국 대통령도 학살범으로 몰리는 나라에서 대령 하나가 제주도민 몰살자로 몰리는 것은 그리 큰일도 아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해마다 박진경 대령의 묘비는 훼손을 당하고, 제주도 좌익들은 암살범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사형장을 찾아가 진혼제를 거하게 치른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스펙트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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