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태어나면 온 천하에 우렁찬 함성으로 존재를 알린다. 이제 그의 세상이 열렸다. 10대를 거쳐 20대를 거치는 동안에 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확립된 정체성에 세상을 향한 자신 만의 세상이 만들어 진다. 땅끝부터 우주까지 드넓은 공간이 자신의 세상이다. 무엇을 하던지 자신을 특정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무한한 가능성에 올라 타서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존재를 만드는 과정이다. 내 존재의 가치는 내 이름으로 알려 지고 불려 지며 상당한 날수를 자신의 세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다.
지그 지글라는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책에서 벼룩 길들이기라는 묘한 장면을 연출했다. 빈 병에 벼룩을 잡아 넣고 뚜껑을 닫아 놓고 며칠이 지나면 뚜껑을 열어 놓아도 벼룩은 뚜껑 높이까지만 뛴다는 실험이다.
이 실험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이다. 인간은 환경이라는 병 안에 익숙해 지면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고 거기까지만 된다. 뚜껑이 열리면 냅다 뛰쳐 나가야 하고 뛰쳐 나간 사람만이 정상에 서는 사람이 된다는 메시지이다.
환경의 병을 뚫고 뛰쳐나갈 수 있는 그 무엇. 무엇의 정체는 분노이다. 분노는 용수철과 같은 폭발력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절망적인 환경. 그에 맞설 수 없는 자신의 능력과 한계가 용수철처럼 눌리고 눌려 응집되었을 때 자신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온다. 이때부터 죽기 아니면 살기로 환경에 맞선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안 되냐는 울분이 응축되어 폭발한 동력은 블렉홀과 같아서 무엇이든지 집어 삼킨다. 환경이 집어 삼켜 지면 둘러싼 절망감도 삼켜 진다. 이어서 하면 된다는 확신이 만들어 지고 신념으로 발전한다. 이런 사람이 결국 정상을 차지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다. 그악한 환경을 부수고 나름 정상에 섰다는 의미이다. 대개가 이무기로 끝나는 데 용까지 되었다면 자신의 능력을 항상 최고로 끌어 올려 한계를 무너뜨렸다는 뜻이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는 결단으로 탐험가는 지구 끝까지 도달했다. 모든 영웅들은 한계를 뛰어 넘어 가치를 만들어 낸 사람들이다. 정상에 설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먼저는 정의에 대한 분노가 있어야겠다. 정의에 대한 분노가 없다면 삶의 가치도 없다는 뜻으로 간다. 정의가 바로 선 국가에서 살고 싶은 것이 국민의 소망이다. 정의가 실천되고 있는 직장이나 사회에서 살고 싶은 것이며 학교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양심이며 꿈이다. 이 때문에 도둑을 잡아야 하고 질서를 깨는 범죄자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 마땅한 일이 집권자나 상류층은 빠져 나가고 힘없는 서민들만 형벌을 받는다면 이는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국가이다. 초코파이 하나 먹었다고 절도자로 고소를 당하고 무고자의 말 한 마디로 성범죄가 되는 세상이라면 이런 국가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죽지 못해 문제를 피해가면서 간신히 살고 있을 뿐이다.
삶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자신이 만들어 낸 경제 수단이나 기술을 가져야 하고, 여기에 가치를 부여하고 최고의 자리에 도달하기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정상에 도달하는 사람이다. 환경에 얽매여 열등감까지 생겼다면 스스로에게 분노하며 분노의 에너지를 폭발시켜 환경의 벽을 부수고 나와야 한다. 그러면 길이 보이고 그 길을 가면 미래의 그림이 그려 진다. 그림을 그리되 정상에 도달하는 자신의 모습을 내다보는 그림으로 그리면 결국 정상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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