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녘 웃녘 모두 빛나지 않는 것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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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녘 웃녘 모두 빛나지 않는 것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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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106>이은봉 "호박넝쿨을 보며"

 
   
  ^^^▲ 호박꽃
ⓒ 우리꽃 자생화^^^
 
 

두엄 구뎅이 뚫고 호박넝쿨 몇 순 담벼락 타고 오른다 가쁜 줄타기 한다 오뉴월
마른 가뭄 뚫고 따가운 햇볕 뚫고

소낙비에 흠씬 몸 적시며 마침내 담벼락 꼭대기에 올라 가부좌를 틀고 내려다 보는 호박넝쿨들 장하구나 노랗게 피워 올리는 호박꽃들 뽀얗게 드러내놓는 젖통들 굉장하구나

젖은 몸 털며 발 아래 시원히 굽어보면 호박넝쿨들 시원하구나 와락, 현기증 밀려 오기도 하는구나

하지만 여기 담벼락 아래 두엄더미 아래 땅으로만 손 뻗으며 납작 몸 젖히는 놈들도 있구나 아프게 몸 비트는 놈들도 있구나

놈들이 피워 올리는 꽃들 참하게 꺼내어놓는 젖통들, 이라고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환하게 빛나지 않으랴

호박! 누가 저리도 노랗고 어여쁘게 피어나는 꽃을 못난이의 대명사라고 불렀을까요 . 호박꽃은 보기만 해도 저절로 어릴 적 고향의 향수가 느껴집니다. 호박넝쿨을 바라보면, 아니 담벼락을 힘겹게 타고 오르며 가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저 호박넝쿨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이 세상살이가 환하게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이 세상살이도 저 호박넝쿨처럼 늘 숨가쁘게 줄타기를 하며 위로 위로만 뻗어오르려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다가 더욱 숨이 가빠오면 잠시 쉬다가 자신도 모르게 넝쿨 곳곳에 한숨 같은 노오란 꽃을 피워내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하여 그 노오란 꽃잎 아래 뽀오얀 젖통처럼 풍만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은 처음 태어날 때 누구나 빈 손으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갈 때에도 태어날 때처럼 누구나 빈 손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사람은 저마다 한 세상을 살아내는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이는 사는 동안 높은 벼슬자리에 앉아 떵떵거리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낮은 곳에 엎드려 흔적조차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저 호박넝쿨을 오래 바라보십시오. 호박은 처음 두엄더미에서 싹을 틔웁니다. 그리하여 어떤 것들은 담벼락에 기어올라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열매를 맺는 것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것들은 그대로 두엄더미 주변을 기어다니다가 잠깐 비치는 햇살에도 고마워하면서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하지만 높은 담벼락에서 꽃을 활짝 피우는 것들이나, 낮고 어둔 곳에 드러누워 꽃을 활짝 피워내는 것들이나, 그 꽃은 모두 노오란 호박꽃일 따름입니다. 게다가 높은 담장 위에서 탐스럽게 맺히는 열매나, 낮고 질펀한 땅바닥에서 탐스럽게 맺히는 열매나 모두 호박일 따름입니다.

높은 곳에 있다고 해서 호박넝쿨에 호박 아닌 수박이 달릴 수가 없고, 낮은 곳에 있다고 해서 호박넝쿨에 호박 아닌 돌멩이가 달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제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사람이 아닌, 신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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