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에게 바란다] 헌재를 불사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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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에게 바란다] 헌재를 불사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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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12.3)은 계몽령이자 자유혁명의 거대한 분수령이다. 한국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앞장서 건국, 호국, 조국근대화를 이루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철저한 반공을 통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로 국난을 극복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공산주의와)싸우면서 일하자"는 비장함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국민들은 위대한 지도자들의 애국심과 헌신 나아가 자유민주주의의 대원칙도 알지 못했다. 역사의 의미를 알기보다 눈앞의 부와 성공에 도취된 배덕의 국민성이 날개를 단 형국이었다. 이러한 시대의 상징이 무능, 부패, 반역의 양김(김영삼, 김대중)이었다. 

양김이 내건 민주화는 성장과 질서가 아닌 침체와 무질서의 민주주의, 즉 가짜 민주주의였다. 실제로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가짜가 성행했고 명멸했다. 페리클레스의 민주주의는 그의 사후 대중폭정(폭민정/중우정)으로 망국으로 치달았다. 바이마르공화국(독일)도 공산주의의 준동 속에 나찌에 의해 사라졌다. 1970년대 남미제국에 불어닥친 민주화도 대중폭정으로 변질되어 거대한 질곡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가 치명적인 것은 남북대치란 냉전구도와 발칸반도화된 국제정세에서 지혜와 단결된 비전이 전무했을 뿐 아니라, 바이마르공화국의 중립적 민주주의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중립적 민주주의는 이론적으로 역사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상충으로 이어진다. 

민주화 이후 전개된 "잃어버린 30년"은 공직자 충원에서 공산주의자(반역자)들이 득세하고 민노총, 전교조, 언론노조 등 소위 반국가세력이 제도권에 편입되는 보이지 않는 "공포의 시대(Age of Fear)"였다. 

한국의 민주화는 한편으로 자유민주주의의 대위기란 양동안교수를 비롯한 일부 선각자들의 경고는 철저히 외면받았다. 일찌기 역사철학자 헤겔(G W.F. Hegel)이 말한 "시대를 앞선자의 외로움과 지혜의 신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언제나 밤에야 날아들었던 것이다." 

좌파정부 10년 만에 마침내 공산주의자(친북주의자)가 각종 국가기구에 전면적으로  등장했고, 언론·노조·교육·종교를 뒤덮을 정도였다. 이명박 정부 초기 정국을 뒤흔든 광우병 사태는 하나의 전기였다. 좌파에 점유된 레거시 언론은 이미 노무현 정부 대통령 탄핵에서 무차별 여론조작으로 열린우리당 돌풍을 만든 바 있었다. 

광우병사태에 "중도실용"을 내건 이명박정부의 대응은 정국의 주도권이 좌파에게 넘어간 계기가 된다. 이후 박근혜 정부로 이어졌지만 대세는 이미 넘어간 상태였다. 하지만 자유민주(애국)세력은 지도자가 없는 상태에 위기를 직감하고 거리에 나오기 시작했다.

세월호, 대통령탄핵, 그리고 문재인 정권의 수립은 자유민주국가로 한국의 정치적(내부적) 종말을 상징했다. "적폐청산"의  명분 아래 역대정부에 대한 유례없는 사법적  조치로 수많은 관계자들이 고통과 좌절을 맛보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침내 보수세력들이 본격적으로 시위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2018/9년 광화문광장을 뒤덮은 반정부시위는 역사적 분기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으나 코로나 19란 유례없는 전염병사태로 극적 반전을 당한다. 

예상과 달리 문재인 정권은 정권재창출에 실패한다. 심지어 공공연한 선거부정 의혹에도 불구하고 보수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그러나 한층 뻔뻔하고 추악해진 공산주의자들은 제도를 악용하여 공직을 점거하고 언론을 통한 여론조작에 혈안이 된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건곤일척의 승부수(?)로 비상계엄이 나온 것이다.

비상계엄은 희극으로 시작했으나 비극으로 전환되었다.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계엄권에도 불구하고 좌파화된 국회, 언론, 사법이 혼연일체가 되어 내란몰이를 하게 되자 국민적 저항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의 조작으로 초기의 혼선을 거치자 유튜브와 광화문이 앞장서 국민계몽과 저항을 유도한 것이다. 여기에 지방과 젊은세대를 아우른 "Save Korea"도 트렌드가 되었다. 

2024/5 국민저항은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가 이끄는 새로운 구상과도 연결되나 무엇보다 지도자(대통령)가 "죽음을 각오한 반공투쟁"에 앞장선 것이 새롭다. 일찌기 70년전(6.25) 개전 한 달여 만에 패퇴를 거듭하에 국토의 대부분이 공산군에 유린된 상태에서 한미장병들 앞에 "나는 한국을 죽을때까지 지키겠다"는 사자후로 전세를 역전시킨 워커장군(Gen. Walton H. Walker)의 용기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탄핵정국이 불과 두 달 만에 헌재에서 최종변론이 끝나고 최종판결을 앞두고 있다. 헌재는 8년전 무고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인용한 바 있으며, 의혹에 싸인 선관위를 두둔했을 뿐 아니라 재판관들의 비행과 부정의혹이 노출되어 "헌재를 불사르자"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고있다. 

이념편향과 부정시비가 그치지 않고 있으나 헌재의 자정노력은 기대난이다. 결국 탄핵 판결도 국민여론에 반하는 가능성이 크다. 역사를 바꾼 프랑스대혁명도 테니스코트의 반란으로 촉발되었다. "헌재가 스스로  역사와 운명의 법정에선 꼴이다"란 말이 공공연하다. 

역사적으로 서구에 비해 아시아는 원님판결, 즉 공정함을 잃은 부패한 판결이 난무했다. 기원전 6세기 부패한 페르시아 판사에 산채로 가죽을 벗긴 이야기는 유명하다. 권력에 맞선 공정한 중국의 흑면판관 포청천은 예외적이었기에 회자되고 있다. 이미 헌재는 국제적으로 부패의 상징이 되고 있다. 

역사는 부패한 기구와 당사자에 대한 제대로 된 제재가 없는 사회는 도덕적으로 회생이 불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헌재를 불사르는 것(재건)은 사회정의와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되찾는 제2건국의 상징이자 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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