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에게 바란다] 진시황을 반면교사로 삼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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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에게 바란다] 진시황을 반면교사로 삼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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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Julius Caesar/시저)가 유럽의 영웅(황제) 모델이라면 진시황은 동양 영웅의 모델이다. 카이사르의 영향력은 신성로마제국(독일) 황제(Kaiser)와 러시아 황제(Tsar)의 명칭의 어원이라는 점 뿐 아니라 건축, 문학(세익스피어), 예술, 인프라(도시) 등에 투영되어 있다. 심지어 처칠 수상은 나찌의 문화적 기원을 카이사르의 게르만 구축에서 찾았고 실지로 파시즘의 어원은 릭토르(카이사르 경호원)의 파스케스에서 유래했고,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카이사르의 군제, 구호, 경례를 모방했다. 

진시황은 중원(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왕조를 열었다. 진 제국은 도량형을 통일하는 등 제국통일의 하드웨어를 완성한다. 그러나 진 제국은 분서갱유와 만리장성 축조로 대표되는 폭정과 쇄국의 상징이기도 한다. 이것은 서구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동양 전제정의 모델이기도 하다. 

예컨대 종신독재관을 역임하여 독재관(자)의 상징인 카이사르는 한편으로 관용을 특징하고 국제화(분권)와 무역을  장려한 인물이다. 카이사르의 암살은 한편으로 전임 집권자였던 마리우스와 술라가 집행했던 살생부를 폐지하고 반대자들을 관용하고 릭토르(경호단)를 해체와 직결되었다. 반면 진시황은 유생(학자)들을 포함한 반대세력에 대한 가차없는 학살과 관료제와 함께 대외교역을 엄격히 금지하는 닫힌 체제를 만들었다. 

하봉규 부경대 명예교수
하봉규 부경대 명예교수

이러한 차이점은 이후 동서양 역사의 전환점이 된다. 로마는 멸망 이후에도 유럽의 봉건제도를 관통하는 전통으로 자리잡았고, 근대화  초기 이슬람을 통해 역수입된 라틴전통은 기독교와 게르만적 봉건제를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의 백과전서파는 동양의 전제정을 인간이 경험한 최악의 체제로, 버트란트 러셀은 유럽의 우위는 전혀 상이한 요소의 결합에서 찾았고 이것은 전제정에서는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오늘날 진시황은 폭정과 탄압과 함께 반문명의 대명사, 즉 톨킨이 쓴 민족판타지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절대악마 샤우론의 원형이다. 신화적 마력을 가진 절대반지를 가진 샤우론은 권력의 화신으로 제거되었으나 9명의 암흑왕들을 통해 최후의 시도를 하는 이야기는 진시황에 대한 서구적 견해와 바이어스(편견)를 상징하는 것이다.

동서세계를 대표하는 영웅상의 대비는 집권 후 개인사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진시황은 통일 후 자신의 권력상징과 후계(왕조)체제를 위해 호화찬란한 아방궁과 거대한 무덤을 조성한다. 반면  종신 독재관이된 카이사르는 일찌기 제사장이 되고서 받은 관저에 머물며 공공건물을 지어 헌납하고 자신의 비밀 유언장에 자신의 재산을 로마시민들에게 분배하도록 명기했다. 이것은 집권자로서 자신의 재산을 공공건물을 지어 기부하는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서구세계의 전통이기도 하다. 

동서황제의 차이점은 문화측면에서도 현저했다. 카이사르는 국립도서관을 건립하고 반대파였던 지성인 바로를 초대관장으로 임명한다. 반면 진시황은 통일과 함께 분열과 경쟁(전쟁)이란 춘추전국시대가 한편으로 발전된 백가쟁명이란 동양문화의 틀을 무참하게 파괴한 것이다. 분서갱유로 표현되는 반지성(anti-intellectual)은 법가사상으로 대체되었고 이것은 관료제란 동양적 특징으로 전개된다. 전제정은 전통 사상의 다양성과 잠재력을 부정하고 획일화된 관료의 등용문인 과거제를 통해 신분제가 확립된 것이다. 

반면 유럽은 로마멸망 후 수많은 작은 나라로 분리된다. 1500년경 1,000여개의 소국들로 분열되었으며, 이들은 500년 동안 수많은 전쟁과 외교협상으로 오늘날 유럽제국으로 남아 있다. 21세기를 앞두고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강대국의 흥망'을 쓴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동서패권의 향방, 즉 서구 우위를 동양과 달리 분열된 유럽은 다양성에서 새로운 시대와 질서를 창조(혁신)하는 잠재력이었다고 평가했다. 

문화대혁명 시기/유튜브 캡처

20세기에는 중국에 진시황의 후예가 등장했다. 모택동이 바로 그 주인공이고 그는 문화대혁명을 이끌었다. 전통을 반사회주의로 규정하고 홍위병들을 동원하여 문화재를 불태우고 책을 불살랐고 전문  관료들을 살해했다. 모택동은 한반도에서도 나타났다. 김성주(김일성)는 6.25를 획책하고 전후 반대파들을 끊임없이 숙청하여 왕조를 만들었다. 오늘날 북조선(북한)은 민주공화국을 내세우지만 실지로는 오직 수령만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사상을 강조하며 절대빈곤, 반지성, 수용소군도로 특징된다. 

결론적으로 독재자(관)의 대명사인 카이사르가 실은 국제화(개방화), 분권화, 교역, 지성사회를 지향했던 반면, 암흑제왕 진시황의 체제는 백가쟁명 파괴와 농업관료제, 집권과 대외교역금지 나아가 왕권이 종교를 통제하는 전제정으로 압축된다. 진시황의 영향은 진제국이 짧게 끝났으나 이후 트렌드가 되어 인구, 전통과 자원 등에서 우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유목제국에의해 끊임없이 위협받았고, 종래에는 낙후성이 하나의 전통이된 것이다. 결국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은 진시황이 아닌 카이사르의 리더십이었고, 반면 김일성은 모택동과 함께 진시황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전장에 책을 소지했던 카이사르를 모방한 나폴레옹(1세)은 전장에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괴테를 만나 불행으로 끝난 소설에 항의의 뜻을 비쳤고, 나폴레옹 3세는 카이사르의 가장 위대한 전투인 알레시아공방전의 전사지를 발굴했다. 미국의 건국자이자 초대 재무장관을 역임한 알렉산더 해밀턴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워싱턴 대통령이 아닌 카이사르를 들었다. 지금도 카이사르는 서구세계의 영원한 영웅상인 것이다. 

(황)제정의 비전을 제시했던 종신독재관 이었던 카이사르는 한편으로 다신교와 균형을 전통으로 했던 라틴의 전통에도 충실했다. 내전을 종식하고 치른 개선식에 신의 질투를 방지하기 위해 얼굴에 붉은 칠을 하는 전통을 고수하고 개선장군을 디스하는 병사들의 구호인 "대머리 난봉꾼 나가신다 시민들은 마누라를 숨겨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던 것이다. 

반면 동양세계에서 자폐와 통제의 상징인 진시황을 존경하는 군주는 없었으나 그가 만든 전제정은 2000년을 관통했다. 유목제국 출신으로 중국의 황제가 된 이들도 공자의 무덤에 수많은 비석을 세우기도 했으나 그들이 채택한 왕조는 진시황이 구축한 전제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예컨대 중국의 역대 왕조중 빈공제(외국유학생의 등용제)와 무역을 장려하여 가장 개방적이었던 당나라도 농업관료제와 절대왕권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근대 유럽사에  초기 나타났던 절대군주제가 실은  기독교와 라틴전통으로 통제된 것이었다.

오늘날 한국의 교육은 독서와 교양이 제거된 특이한 구조이다. 미국의 교육에 집중하고 있으나 정작 미국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제국 처럼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교육을 공식화했다. 왜냐하면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와 교육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로마에 있는 국립자료관에는 2000년전 자료를 찾는 각국의 젊은 대학생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과 한국의 학생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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