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이 품은 풍부한 에너지가 말의 품격과 의미 증폭

이것은 충고나 조언의 글이 아니다. 소통의 규칙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3일 저녁 TV조선 ‘강적들’은 대담 형식이라기보다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인터뷰처럼 진행됐다. 그는 이날 평소 대중연설이나 출근길 인터뷰에서와는 다른 화법을 보여줬다. 여유와 관용이 가미됐다. 다소 새로운 모습이어서 두 번을 다시 돌려봤다.
‘2초’를 더 쓰라는 말을 하고 싶다. 말의 운을 떼기 전에, 또는 의미를 전환할 때 2초 정도의 여유가 더 필요하다. 어제는 기존 스피치에 비해 0.5초 정도 길어진 여백이 눈에 띄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소통에 있어서 여백이란, 화자가 생각을 정리하고, 화두를 가다듬는 최소한의 시간이다. 말을 잘하고 논리가 정연한 사람일수록 운을 떼기 전 여백이 1초냐 2초냐의 차이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말의 무게와 가치를 볼 때 그 차이가 지니는 의미는 2배가 아니다. 본질과 본말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가끔 우리는 경험한다. 0.5초만 더 생각했더라면 하지 않아도 되었을 말이 부지불식간에 나오는 것을. 한동훈 레토릭에서도 가끔 보는 현상이다. 그의 언어 구사는 매우 화려하고 정교하다. 목적지를 정해 놓고 날아가는 쏜살과 같다. 그의 가쁜 호흡마저 처음엔 신선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속도감은 시간이 갈수록 청자로 하여금 불안함을 느끼게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말은 생각보다 느려야 한다. 그래서 항상 정치판을 뒤집는 말은 여백 끝에 나온다. 여백이 품은 풍부한 에너지가 말의 품격과 의미를 증폭시킨다. 여백의 에너지가 응축되면 한마디로 충분하다. ‘커터칼 사건’으로 병실에서 깨어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뱉은 “대전은요?”처럼.
그는 검사와 법무부 장관이라는 논리 영역으로부터 비대위원장이라는 투사의 공간을 지나 여당 대표라는 온전한 정치의 영역에 도착했다. 전통적인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어도 좋다. 또 아니어야 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시민’은 취조받는 피의자도, 연설을 들어주는 청중도 아니다. 때로는 그에게 침묵도 필요할 것이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짧은 여백이다.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이지만, 소통의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고받는 대화에서 보여주는 여백은 상대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묻는 사람의 의사에 대한 숙고(熟考)의 표현이자 청자가 가질 수 있는 생각의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늘 자신이 결론을 내리려고 노력한다. 소통은 논리나 판단의 영역이 아니다.
국민이 그에게서 답을 찾으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정치의 8할은 말이다. 정치인의 말은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보다는 그 의미들의 꾸러미가 지향하는 이념으로서 그 가치가 완성된다. 그 이념이 희망이 되고, 희망이 모여 힘이 되는 것, 그것이 정치가 아닐까.
말이 정치의 힘이 되려면 집단지성(集團知性)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그래서 대중들은 원한다. 더 다양한 생각들이 만날 수 있는 스펙트럼의 공간, 2초를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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