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서 피어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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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피어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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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96>정진업 "낙하"

 
   
  ^^^▲ 통곡보다 어려운 오열의 연속이여
ⓒ 우엉/우리꽃 자생화^^^
 
 

불붙는 것 같은
화안한 속에서
꽃가루가 없어도
열매는 영글어야겠다

그래
훈훈하게
달아 좋은 무화과인데

꿀벌의 방위처럼
너는 왜 처음이요 마지막인
열매 한 알을
가슴 깊이 간직하지 못하느냐

영웅이 모르는
통곡보다 어려운
오열의 연속이여

불꺼진 것 같은
암암한 여정 속에서

거부하는 낙하를
거부하는 몸짓으로
꽃잎 없어도
알찬 열매는
먼저 떨어져야겠다는 것이다

무화과(無花果). 꽃이 없는 과실. 그렇습니다. 무화과란 이름을 떠올리면 언뜻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신 뒤, 자신의 모습과 꼭 같은 형상(아담과 이브)을 만들어, 지상낙원에서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꼭 한 가지 규율을 정했습니다. 그 규율은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아담과 이브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겨도 좋으나, 무화과 열매만은 절대 따먹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그 열매를 금단의 열매라고 부르며, 하느님의 규율을 철저하게 지켰지요.

그런 어느날, 에덴동산에 살고 있던 뱀이 이브를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무화과 열매를 따 먹으면 하느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그 말에 귀가 솔깃해진 이브는 아담에게 무화과 열매를 따먹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마악 무화과 열매를 삼키려는 순간, 하느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무화과 열매가 아담의 목에 걸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남자에게는 누구나 목울대에 무화과 열매를 닮은 뼈가 생겼다고 합니다. 또한 그때부터 부끄러움을 알게 된 아담과 이브는 무화과 잎사귀로 자신의 치부를 가렸으며,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추방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를 원죄<原罪)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원죄로 인해서 사람에게는 생노병사가 생겨났으며, 태어나서 죽는 그날까지 희노애락에 시달리게 되었고, 하느님처럼 영생을 누릴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근데 무화과는 정녕 꽃이 없는 과일일까요? 아닙니다. 꽃이 없는 나무가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가 있겠습니까. 무화과는 열매 속에 작은 꽃이 촘촘하게 들어 있습니다. 무화과 꽃은 봄부터 여름까지 잎겨드랑이에서 꽃턱이 항아리 모양으로 변하면서 내벽에 흰색의 작은 꽃이 빽빽하게 매달립니다.

그래서 무화과 꽃을 흔히 머리 속에 차례로 숨은 꽃이란 뜻으로 은두화서(隱頭花序)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1800년대 후반 김옥균 등이 일본국에서 처음 가지고 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인은 무화과 열매가 "불붙는 것 같은/화안한 속에서/꽃가루가 없어도" 영근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겹게 영근 무화과 열매가 툭, 툭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래/훈훈하게/달아 좋은 무화과인데", "너는 왜 처음이요 마지막인/열매 한 알을/가슴 깊이 간직하지 못하느냐"고 되묻고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 문득 최루탄을 맞고 죽은 김주열 열사가 떠오릅니다. 당시 김주열 열사는 마산상고에 갓 입학을 앞둔 어린 학생이었습니다. 아직 제대로 피어나지 못한, 아니 숨어서 피어나는 꽃처럼, 김주열은 그렇게 죽음으로써 민주화의 알찬 열매를 이 세상에 떨구고 갔습니다. 저 무화과 열매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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