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는 시대의 대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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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는 시대의 대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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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형사들을 통해 나타난 우리 시대

^^^▲ 영화 <투캅스>의 두 형사, 박중훈과 김보성^^^
우리 사회에서 경찰, 그중에서도 형사들만큼 음지에서 고생하지만, 양지에선 환영받지 못하는 집단도 드물 것이다. 소위 경찰이란, 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공권력을 부여받은 집단이다. 길거리의 교통순경에서 흉악범들을 상대하는 강력반 형사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활동은 궁극적으로 사회질서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간혹 그 질서가 가진 자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다보면 대중을 억압하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인간을 위한 질서'가 아니라 '질서를 위한 인간'을 강요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형사라고 불리우는 집단들이 가진 특수성은 각종 사회질서와 인간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최전선에 가장 먼저 투입되는 공권력으로서, 필연적으로 우리 사회의 그늘진 이면과 맞닿아 있다. 형사들은 양지의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음지를 누빌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튜브>의 장형사(김석훈)처럼 사회질서를 수호하는 전형적인 겉멋 히어로의 모습을 띄기도 하지만, <투캅스>의 강형사(박중훈)처럼 때로는 그들 자체가 부조리가 되어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모순된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투캅스 vs 공공의 적' 부패한 공권력을 이야기하는 형사

대개 스크린에서 비추어진 형사들의 모습은 다분히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주인공이 올바른 충고를 하면 무시하고 고압적인 태도로 훼방이나 놓는 복지부동의 공무원, 항상 뒷북만 치다가 범인을 놓치는 무능력자. 범죄자보다 더 부패한 '짭새들'이 수두룩하다. 주인공이 고생해서 사건을 다 해결해놓으면, 뒤늦게 사이렌만 요란하게 울리며 몰려와서 폼만 잡는게 영화 속 경찰들의 모습이다.

겉멋 충만한 조폭들의 등쌀에 밀려 형사들이 맥을 못 추고 있는 스크린 속 기현상은, 사실 경찰이라는 집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진리처럼 통용되고 있는 모순된 세상, 가진 자들만의 권력이라는 면에서 경찰은 곧 경직된 관료사회와 지배층을 상징하는 도구로 묘사되었다.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93)는 90년대 문화적 해빙기를 맞이하여 그동안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던 공권력 비판의 메세지를 코미디로 녹여낸 작품이다. 속편이 이어지며 저급한 패러디와 억지스러운 설정을 남발하는 3류 코미디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1편은 나름대로 짜임새있는 구성과 리얼한 사건묘사로, 통렬하게 사회를 조롱하는 비판의식이 돋보이던 풍자극이었다. 정의로운 형사였던 박중훈이 차츰 타락해가는 과정과 닳고닳은 중견 형사 안성기의 능청스러움은 부패한 한국 사회의 리얼리티에 기초하고 있었기에 관객의 공감을 끌어낼수 있었다.

강우석 감독은 상업 코미디물로 인정받은 감독이지만, 주위의 평가와는 달리 사회 비판적인 작가로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품에서는 사회현실에 대한 훈계조의 장광설이 흘러 넘친다. <투캅스>뿐 아니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공공의 적>등 다수의 작품에서 그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뒤틀린 사회현실에 대한 한바탕 설교를 잊지 않는다. <공공의 적>(02)에서 설경구가 연기한 형사 '강철중'은 사회를 보는 강우석의 눈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적당히 타락하고, 사회에 물든 형사 강철중. 그는 도덕의 기준으로서는 충분히 나쁜 놈이지만, <아메리칸 사이코>의 크리스천 베일을 그대로 베껴온 것 같은 살인마 조규환(이성재)을 만나면서 그는 차츰 히어로로 변해간다. 적당히 타락한 형사와 패륜을 저지르는 상류층 가운데 누가 더 '공공의 적' 이냐, 하는 질문에서 강우석 감독은 망설임없이 조규환의 손을 들어준다. 그리고 '히어로'강철중의 입을 빌어 '부모의 마음'이니 '사회 정의' 등에 대한 교훈적인 장광설을 뿜어낸다.

'박하사탕 vs 살인의 추억' 암울한 시대, 시스템의 피해자들

위의 두 작품이 '형사'로 대표되는 개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면, <박하사탕>과 <살인의 추억>은 시대성을 지닌 사회가 어떻게 개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변화시켜 나가는지에 주목한다.

<박하사탕>(00)은 형사물은 아니지만, 주인공 영호(설경구)의 인생변화를 추격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터닝포인트가 되는 부분이 영호의 형사시절이다. (84년, 87년) 이창동 감독은 피해자의 시선으로서가 아니라 가해자로서의 영호에 주목한다.

87년, 저항할 수 없는 대상을 상대로 무제한의 폭력과 새디스트적 본성을 폭발시키는 형사 영호. 바로 이전인 84년, 신참 형사로서의 영호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역설적으로 자아의 순수성을 포기한다. 그가 선택한 형사라는 직업은 시대의 폭력과 후진성을 상징하는 설정이다. 이창동은 그런 가해자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으로서의 made in korea를 조명한다. 뒤를 이어 '5.18'과 '소풍'으로 이어지는 역순의 과정 속에서 일말의 동정도 없을 것 같던 영호가 알고보면 시스템의 진정한 피해자라는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03)>역시 형사이야기를 다루고는 있지만, 전형적인 형사물과는 거리가 멀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국내에서 유래없는 실화를 다루면서도 그 진행은 스릴러적인 구조와는 거리를 둔다. 범인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반전의 반전은 이어지지만, '범인찾기 놀이'를 선정적으로 부각시키기보다는 수사 과정에서 형사들의 생활 속에 비친 한국사회의 모습에 주목한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카피는 범인의 정체에 대한 미련을 나타내지만, 영화를 끌고가는 힘은 '왜 범인을 잡을 수 없었고, 왜 범죄를 막지도 못했는지'에 대한 분노이다. 증거 자료가 경운기에 밟혀 사라져버리고, 수사본부 코앞에서 부녀자들이 도륙되고, 데모 때문에 필요한 인력도 공급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상황들은 형사들을 광기로 내몬다. 육감(박두만)과 서류(서태윤)라는 그들만의 무기마저 자신을 배반할 때 형사들에게 남겨지는 것은 범인에 대한 분노보다 사회적 모순에 대한 무기력감이다.

두 작품은 묘하게도 80년대라는 시대적 특성에서 그 방향을 같이한다. 과연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80년대라는 시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품행제로>처럼 롤러장과 흘러간 대중문화,<해적,디스코왕 되다>의 정겨운 달동네처럼, 잊혀진 시절의 노스탤지어가 살아숨쉬는 그리운 추억이기도 하지만, 한 구석에서는 미처 짜내지 못한 고름이 썩어가는 악취를 풍기던 아픈 시대이기도 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vs 와일드 카드' 형사들의 '생활의 발견'

공권력의 상징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형사는 고독한 존재이다. 수배전단을 밥줄로 여기며, 범죄자들과의 몸싸움을 일상생활처럼 여기고 살아가야 하지만, 양지의 사회는 그들의 노고를 몰라주는 경우가 많다.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99)와 김유진 감독 <와일드 카드>(03)에서처럼, 최근에는 형사들에게 특별한 의미나 상징을 부과하기보다 우리 일상의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조명해내는 시도가 많다.

<경찰청 사람들>의 영화버전을 연상시키는 형사들의 모습은 남들보다 '조금 더 피곤한' 직업을 가지고 사는 일반인이다. 우락부락한 형사들도 알고보면 범죄자들에게 칼을 맞을까 두려워하고, 범인 검거전에 긴장해서 소변을 봐야만 하는 보통 사람들에 지나지 않는다. 쌍권총을 휘두르거나, 일당백의 무술 실력을 뽐내는 걸멋 히어로는 없지만 그대신 인간미로 무장한 형사들의 촌스러운 모습은 오히려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들이 싸우는 것은 어떤 거대한 권력도, 숨겨진 음모도 아니다. <인정사정..>의 범죄자 장성민(안성기)나 <와일드 카드>의 퍽치기 일당은 그저 사회의 비주류를 맴도는 잡초들일 뿐이다. 형사들이 그들을 끈질기게 추격하는 이유도 투철한 사명감이나 영웅 심리와는 거리가 멀다. '직업이니까...우린 그냥 일단 잡고 보는 거야('인정사정 볼겂없다'에서 우형사)'

한국 영화계의 스타일리스트로 불리우는 이명세는 선혈이 낭자한 활극대신 다분히 동화적이고 몽상적인 이야기 전개로 형사들의 삶을 그려낸다. 이 작품은 형사를 소재로 했을 뿐, 액션보다는 형사들의 애환에 초점을 맞춘 휴먼 코미디에 가깝다. 긴장감 넘쳐야할 격투씬도 '달밤의 체조'로 바꾸어놓고, 거친 형사들과 어울리지 않는 눈싸움을 연출하기도 한다.

반대로 김유진 감독의 <와일드 카드>는 '인위적인 연출'을 자제하고, 사건의 현장감을 높이는데 주력한다. '조폭이 영웅처럼 여겨지는 요즘 영화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는 스스로의 말처럼, 그는 퍽치기 일당의 잔인한 범죄와 대비되는 열혈 형사 양동근의 활약상을 부각시킨다. 적당히 오버하고 적당히 껄렁대지만, 범죄에 분노할줄 알고 인간적인 약점도 있는 형사들의 모습은 어쩌면 이상적인 경찰상에 대한 바램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달린다

형사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테마 중의 하나가 바로 '달리기'이다. 형사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시종일관 달린다. 액션 영화의 볼거리를 넘어서서 달리기는 형사들의 삶에서 가장 절박한 순간을 리듬감있게 표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바로 세 발자국 앞의 범인을 따라잡지 못해 장거리 레이스를 펼치는 박중훈(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나, '우린 그들보다 앞에서 달린 적이 없다'며 자조하는 양동근(와일드 카드)의 뜀박질은 우리 사회에서 형사들의 고뇌와 정체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다.

형사는 우리 주변에서 가깝고도 먼 존재이다. 우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수호자이기도 하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많이 알아서 좋을 거 없는' 집단이기도 하다.그러나 어쨌든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부정할수 없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그늘과 함께하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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