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전파(無線電波, radio)의 발견과 이용
독일의 물리학자 헤르츠(H. Hertz)가 1886년에 맥스웰(J. C. Maxwell)의 이론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최초의 무선전파 전송(傳送, transmission)이 이루어졌다. 마르코니(G. Marconi)는 1897년에 무선(無線, wireless)으로 모르스부호를 전송할 수 있는 무전기(無電機, radiotelegraph)를 개발하고 회사를 설립하여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1899년 영국 해안에서 배가 침몰했을 때 무전기 덕분에 구명선(救命船, lifeboat)을 바로 보내 인명을 구출함으로서 그 효용이 입증되었다.
그 후 10년 내에 무선 방송(放送, broadcasting)이 가능해져 뉴스와 오락을 제공하는 새로운 산업이 시작되었으며 최초의 상업방송국(商業放送局, commercial broadcasting station)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 설립되었다.




텔레비전(Television)과 전파탐지기(電波探知機, 레이더/radar)는 라디오의 부산물인데 무선으로 영상을 전송하는 것은 1920년대 말부터도 가능했으나 일반사람들이 재정적으로 큰 부담 없이 텔레비전을 사서 즐길 만큼 일반화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였으며 여기에는 영국의 베어드(Baird)텔레비전개발회사나 미국의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알씨에이(RCA) 등과 같은 회사들이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레이더 역시 그 원리는 20세기 초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그것이 실용화된 것은 1930년대에 독일의 호전성에 위협을 느낀 영국이 일단의 과학자들을 레이더연구에 투입하면서부터였으며 레이더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국토방위는 물론 선박과 비행기의 방어용으로도 이용되었다.





복사기(複寫機, photocopier)와 사진기(寫眞機, camera) 그리고 영화(映畵, movie)
최초로 사진이 촬영된 것은 1826년이었으며 그 후 많은 발전이 있었으나 그 정점은 아마 즉석사진(卽席寫眞, instant photo)을 찍는 폴라로이드 카메라(Polaroid Land camera)와 연속촬영이 가능한 영화촬영기(映畵撮影機, movie camera) 그리고 제록스(Xerox) 복사기일 것이다.
미국의 랜드(E. H. Land)는 1947년에 음화(陰畵, negative) 및 양화(陽畵, positive) 필름과 현상액(現像液, developer)을 같이 합쳐서 촬영 즉시 사진을 뽑을 수 있는 필름을 발명했으며 1963년에는 칼라사진용 필름도 개발했다. 영화도 처음에는 흑백(黑白, black and white)에 무성(無聲, silent)이었으나 지금은 칼라와 소리(sound)는 물론이고 대형화면에 입체영화까지 제작하여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시장을 가진 영화산업을 구축하였다.
그 후 일반인들도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비디오카메라(video camera)가 등장하였다가 뒤이어 녹화와 재생이 자유로운 캠코더(camcorder)로 바뀌었으며 최근에는 이들이나 카메라나 모두 아날로그(analog)에서 디지털(digital)로 바뀜으로서 이제는 사진을 인화(印畵, printing)하여 앨범에 정리하던 시대는 지나고 컴퓨터에 영상(映像, image)채로 보관하였다가 보고 싶을 때 아무 때나 화면으로 보는 시대가 되었다.
복사기는 뉴욕의 특허변리사였던 칼슨(C. Carlson)이 1938년에 발명하였으며 1959년에 로체스타(Rochester)의 할로이드(Haloid)사가 상업적으로 실용화한 제품을 제록스-914라는 상품명으로 시장에 내놓았는데 이때부터 복사기의 수요는 타사제품을 포함하여 봇물 터지듯 하였다.










컴퓨터(computer)의 등장
현대적인 계산기(計算機, calculator)의 조상은 아마 파스칼(B. Pascal)이 1642년에 만든 가산기(加算機, adding machine)일 것이다. 19세기에는 더하기와 곱하기를 할 수 있는 계산기들이 많이 제작되었으며 버로스(W. S. Burroughs)의 제품은 결과를 두루마리종이에 기록할 수도 있었다.
영국 케임브리지(Cambridge)대학의 수학교수였던 배비지(C. Babbage)는 1833년경부터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정보(情報, information)를 처리(處理, processing)하고 저장(貯藏, storage)하며 검색(檢索, retrieval)할 수 있는 해석기관(解析機關, analytical engine)을 구상했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이를 실현시킬 수 없었다.
컴퓨터 발전의 또 하나의 공로자는 1890년대에 미국 인구조사국(人口調査局, Census Bureau)에 근무하던 홀러리스(H. Hollerith)인데 그는 천공(穿孔)카드(punch card)시스템과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는 전기기계계수기(電氣機械計數器, electro-mechanical counter)를 개발하였다.
인구조사국을 그만둔 후 그는 자신의 회사(Tabulating Machine Company)를 설립하고 1901년에는 데이터 입력용 자판(字板, keyboard)을 개발하였으며 이 회사는 결국 1924년에 다른 회사들과 합쳐져 아이비엠(IBM)이 되었다. 그리고 하버드(Harvard)대학교의 에이킨(H. Aiken)을 중심으로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MIT),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대학교 및 아이비엠의 연구진들이 힘을 합쳐 배비지의 꿈을 현실화함으로서 현대적인 컴퓨터 Mark I을 등장시켰다.
컴퓨터는 처음에는 전쟁을 위해 탄도표(彈道表, ballistic table)를 작성하거나 전후에는 인구조사 등에 사용되었으나 얼마 안 되어 컴퓨터의 용도는 정부기관에서는 물론 회사에서 가정에 이르기까지 한없이 확장되었다.
소형컴퓨터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서(microprocessor)는 군사용 무기에서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안 쓰이는 곳이 없게 되었고 컴퓨터는 인공지능(人工知能, artificial intelligence)을 가진 인공두뇌(人工頭腦, mechanical brain)로까지 발전하게 되었으며 이제 컴퓨터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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