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장지역에 암장해서 발복한 경우가 한산 이씨의 경우라면 남양 홍씨시조 묘의 예는 그 반대가 된다.
황해도 은율군 은율면 남천리(南川里)에 어느 시조 묘가 있는데 이 묘의 발복으로 왕비를 배출했다고 믿어온 명당이었다. 그래서 이 묘 위쪽에 그 후손일지라도 묘를 쓰면 망한다는 풍수설이 내려와 금장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 후손 중 욕심 많은 한 사람이 진짜 명당 혈은 그 시조묘 위쪽에 있다는 지사의 말을 듣고 지사가 정해 준 곳에 암장을 했다. 그러나 그 지손은 지사의 말과는 달리 오히려 3대가 못 가 절손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풍수지리에 관한 속설에는 엄격한 금기사항이 많다. 금장지역에 암장하는 것은 옮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주술적 처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묘를 쓰는데도 방위라든가 관리에 대해 지키기 어려운 주문을 하고 있는 것도 후손들이 묘의 발복에 대한 관심도를 감안하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일이다.
다음은 평안남도 용강군 해운면(海雲面) 성현리(城峴里)에 있었던 사례다.
1929년 용강경찰서 보고에 따르면 이 마을의 정명환(鄭明煥, 당시 49세)씨는 평소 성질이 온순하여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런 정씨의 아버지가 죽어 장례를 지내게 되었다.
묏자리를 잡아 준 지사가 상주인 정씨에게 특별히 일렀다. 묘를 쓴 뒤 3년 동안 좌향을 바꾸지도 말고 묘에다 성토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만약 이를 어기면 흉운(凶運)이 닥쳐 사람이 죽거나 상하는 사건이 생긴다고 예언했다. 그러나 정씨는 이런 금기사항을 어기고 자기 생각대로 묘를 남향에서 동향으로 바꾸었다. 그런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산림조합원과 산의 경계문제로 언쟁이 일어나 조합원에게 전치 1개월을 요하는 중상을 입히고 말았다. 그러자 이웃 사람들은 지사의 말을 듣지 않아 일어난 일이라고 믿고 땅(묘)의 효험이 얼마나 정확하고 무서운 것인가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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