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남은 인생 마음껏 불태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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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남은 인생 마음껏 불태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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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의 고집은 황소고집이다. 최씨치고 고집 안센 사람이 없다지만 한번 비틀어지면 며칠간 갔다. 훈이의 이런 고집을 연지는 잘 알고 있었기에 가급적이면 빨리 풀고 싶어 말을 붙였다.

“남자가 뭘 그래요. 배고파요. 밥 먹고 어디 들어가면 될게 아닙니까?”

훈이는 견디기 어려웠던지 둥굴레라고 써 붙인 한정식 집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경기도 도청에서 한국전통음식점으로 지정한 집이어서인지 고급 승용차들이 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고급음식점이라서 입구에서부터 도자기며 상다리가 훈이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들은 창가가 있는 쪽으로 조심스레 앉았다. 개량 한복을 입은 여자가 메뉴판을 들고 들어와 훈이 앞에 내밀었다.

원 세상에, 일인분이 4만원, 2인분에 8만원, 커피 한 잔을 나가서 먹고 나면 십만 원, 모텔을 갈 생각도 말아야 한다. 만약 모텔을 간다면 집에 돌아갈 때는 반찬값이라도 건네주어야 하는데 기왕 이렇게 된 것, 이것으로 오늘은 끝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모텔에서 나왔으면 됐지 이렇게 밀고 갈 수 밖에 없었다. 훈이는 정식을 시켜놓고 시선을 마당 한가운데로 쏟아 부었다.

"우리 둘이 있을 때는 우리 둘만의 행복으로 끝냅시다. 당신은 나를 받아줄 아무런 준비도 없잖아요. 집에는 여우같은 마누라가 있고 아들도 있잖아요. 당신이 부인과 이혼을 한다면 나도 이혼하고 당신에게 갈게요. 나는 이미 남편의 품에서 떠난 지 오랩니다.”

연지의 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남편과 정이 떨어진 것은 훈이를 알고부터가 아니다. 직장생활을 하던 남편이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났던지 전자제품 대리점을 하겠다고 나섰다.

15년간 주택적금을 들어 겨우 만든 아파트를 담보로 잡히고 은행 대출을 받은 돈에다가 친정오빠에게 부탁하여 싼 이자를 소개받아 부평역 근방에 가게를 차렸다. 이때만 하더라도 연지는 사장 사모님으로 행세하며 백화점을 내 집 드나들 듯했다. 지금 입고 다니는 옷들은 모두 그때 맞춰 입은 옷이다. 좀 성미가 까다로워 한 벌을 사면 몇 번이나 고치러 다녔다. 몸에 맞게 맞춘 옷이라 사오 년이 지나면서 허리둘레가 조여들어 지금은 나들이 할만한 옷이 없었다.

IMF가 터지고 난후 남편의 가게는 파리를 날렸다. 가게 한 모퉁이에는 친구들을 불러 화투판을 벌리고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는 사이에 빚만 덩그렇게 짊어지고 문을 닫으면서 남편과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한 방을 쓰면서도 이부자리를 두 개 깔고 이불도 각각 덮기 시작했다. 여느 때는 이불속에서 밤새 싸움을 했다. 이혼을 하지 않고 이렇게 살고 있는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하라며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남편은 충청도 사람이라 좋은 듯하면서도 끝이 질기다. 한번 거슬리면 두고두고 물고 늘어지는 통에 연지는 질색했다. 경상도 여자가 충청도 남자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말이 싸움만 하면 터져 나왔다.

훈이는 싸움을 해도 3일이 넘지 않아 사과를 하고 다시 만나지만 남편이란 이 작자는 한 달이 가도 말을 하지 않아 마치 하숙생이 자고 나가듯 이렇게 살아온 지 몇 년이 됐다.

역시 경상도 여자는 경상도 남자라야 화끈하다고 생각해온 연지는 경상도 남자도 별것 없다며 훈이를 꾹꾹 찔러보았다. 연지의 말에 전기가 가는지 훈이의 반응이 왔다.

“당신이 원하면 이혼할 게. 나는 솔직히 말해서 당신 같은 여자를 만났으면 출세했을 거야.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해. 남자의 출세는 여자의 내조가 절대적이야. 내가 이혼할 수 있겠끔 시간을 줘. 당신과 남은 인생 마음껏 불 태워 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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