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 만든 왕릉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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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만든 왕릉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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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마지막 왕의 피라미드식 석총 '구형왕릉'

 
   
  ^^^▲ 가야 마지막 왕의 한이 서린 구형왕릉
ⓒ 이종찬^^^
 
 

어디쯤 왔을까. 저만치 뒤돌아보면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이 희부연 봄안개 속에서 절뚝이며, 절뚝이며 나를 부르고 있다. 왜 부르는가. 무엇을 깜빡 빠뜨리고 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아직도 그 누군가에 대한 못다한 그리움과 지독한 기다림이 남아 다시 한번 그 누군가를 살포시 불러보고 싶기라도 하단 말인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온, 아무리 애달프게 불러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몸서리 같은 그 길을. 아무리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수 없는 그 길 위에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소중한 그 무엇을 송두리째 두고 왔다고 한들 이제 와서 어찌 한단 말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저만치 앞을 바라보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봄안개 속에서 실루엣으로 자꾸 흔들리고 있다. 왜 흔들리는가. 무엇을 찾고, 무엇을 얻기 위해 그리도 흔들리고 있단 말인가. 아니면 아직도 그 무언가에 대한 불타는 야망과 더러운 욕심이 남아 다시 한번 그 무언가를 채워보고 싶기라도 하단 말인가.

버려야 한다. 지금껏 마음 속 가득 채워둔 이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 따위는 이제 버릴 나이도 되지 않았는가.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도 몽땅 버리지 못할 것을. 그 무엇이 그렇게 소중하고, 안타깝고, 두려워서 아직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미련퉁이처럼 마음 깊숙이 꼭꼭 숨겨두고 있단 말인가.
 

 
   
  ^^^▲ 구형왕릉 입구^^^  
 

봄바다가 출렁이는 하동으로 향하다가 문득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계단식 돌무덤, 즉 한국식 피라미드 무덤이 있다는 산청 왕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근데 가락국의 10대 왕이었던 구형왕은 왜 하필이면 산청까지 왔을까. 그리고 왜 하필 돌을 쌓아 무덤을 만들었을까. 나라를 잃고 유배를 떠나온 죄인이라서? 김호부 선생에게 물었다.

"1971년에 지표조사를 했던 최몽룡 교수는 구형왕릉도 김해의 수로왕릉과 같은 적석총의 초기 형태라고 했다면서요?"
"그게 일반적인 정설인데, 학계 일부에서는 다른 의견도 많아. 피라미드식으로 돌을 쌓아 만든 형태로 봐서는 무덤이 아니라 돌탑일 가능성도 있고, 제사를 지내는 일종의 돌제단일 수도 있다는 게지."

다랑이 논과 밭들이 즐비한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어 조금 더 달려가자 저만치 덕양전이 보인다. 왕산에 있는 구형왕릉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덕양전은 정조 17년, 서기 1793년에 후손들이 사적 보호를 위해 지은 사당이다. 1천200여 평 남짓한 이곳에는 가락국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사적 제214호로 지정된 구형왕릉은 이곳에서 왕산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간 길을 따라 2km쯤 더 올라가야 한다. 가는 길목에는 언뜻 <유의태 약수터>라는 팻말도 보인다. 그래. 맞다. 이곳 화계마을이 바로 한때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허준'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 아니던가.
 

 
   
  ^^^▲ 구형왕릉 옆 사당
ⓒ 이종찬^^^
 
 

"허준의 스승 유의태 선생이 이곳 산청에서 태어나 이 마을에 들어와서 의술을 폈다면서요?"
"확실치는 않아. 학계에서는 아직까지도 유의태 선생이 의술활동을 편 마을이 이곳 화계마을이라고 단정을 짓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산길을 올라가다보면 '유의태 약수터'라는 작은 팻말이 붙어 있는 오른 편에 구형왕릉의 피리미드식 돌무덤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계단식으로 돌로 쌓은 무덤이라는 구형왕릉은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능들과는 전혀 다른 특이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무덤이 아니라 돌탑처럼 보이기도 한다.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왕산의 허리춤에 자리 잡고 있는 구형왕릉은 삼태기 모양의 너른 묘역과 거대한 돌무더기가 눈길을 끈다. 이 왕릉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경사면에 크고 작은 돌을 7단으로 쌓아올려 층과 단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단의 가운데 계란형으로 생긴 돌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이 돌무덤은 앞면 전체의 높이가 7.15m이며 최하단의 길이는 20.6m라고 한다. 그리고 동쪽면 4단 중앙에는 가로 40cm, 세로40cm, 길이 68cm의 감실 형태를 갖춘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발견 당시에도 그 내용물이 없어 감실처럼 보이는 저 시설의 용도가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없단다.
 

 
   
  ^^^▲ 4단 중앙에 감실 형태를 갖춘 구형왕릉
ⓒ 이종찬^^^
 
 

구형왕릉 앞면 중앙에는 가락국 양왕릉이라는 비석이 하나 수문장처럼 우뚝 서 있고 그 주위에 문인석과 무인석, 석수(돌짐승), 상석 등이 1쌍씩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이 석물(石物)들은 구형왕릉을 쌓았을 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에 김씨 문중에서 새로 조성한 석물들이라고 한다.

"근데 왜 '양왕릉'이라고 새겨놓았을까요?"
"신라에게 나라를 내 준 왕이라 해서 그렇게 부른다는구먼."
"한때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서 시묘살이를 했다면서요?"
"그러니까 <신라 태대각간 순충장렬 흥무왕 김유신 사대비>라는 이 비석이 세워져 있겠지. 그리고 이곳이 바로 김유신 장군이 활을 쏘던 자리라 하더구먼”

구형왕은 서기 521년, 가락국(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위에 오른 뒤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나라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구형왕은 신라군과 끝까지 항전하다 이곳에서 죽었단다. 그때 구형왕은 '나라를 구하지 못한 몸이 어찌 흙 속에 묻히겠느냐. 차라리 내 무덤을 돌로 덮어라.' 는 그런 유언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가락편년기>에는 '구형왕이 겨울에 방장산의 태왕궁에서 신라에게 나라를 바치자 그 시호를 양왕이라 하였다' 라고 적혀 있단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구형왕은 신라에 투항한 뒤에도 이곳에서 30년을 더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구형왕릉의 정식 명칭은 '전구형왕릉'(傳仇衡王陵)이라고 부른다. 구형왕릉의 이름 앞에 전(傳)자가 붙은 이유는 이 능이 구형왕릉의 능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란다.

 

 
   
  ^^^▲ 차라리 내 무덤을 돌로 덮어라
ⓒ 이종찬^^^
 
 

"그렇다면 누가 이곳을 구형왕릉이라고 주장했을까요?"
"1798년 산청의 유생 민경원이라는 분이 아래 편 골짜기에 있는 왕산사의 나무 궤짝에서 탄영 스님이 쓴 <왕산사기>를 발견할 때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 옷, 녹슨 칼, 활 등의 유품도 함께 들어있었다고 하더구먼."

그랬다. 그 <왕산사기>에는 '신라 문무왕 16년, 서기 676년에 신하를 보내어 구형왕릉과 왕산사를 중수케 했고, 1021년에는 고려 신종이 산음현감을 시켜 왕산사를 보수케 했다' 고 적혀 있단다. 또한 '왕산사가 임진왜란에 불탔던 것을 인조 2년, 서기 1624년에 인종 스님이 왕산사를 중수했으나 폐허가 되고 만 것을 효종 1년, 서기 1650년에 법영 스님이 왕산사를 다시 중수하고 구형왕의 위패를 땅에 묻었다' 는 기록도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동국여지승람> 산음현 산천조에 의하면 '왕산은 현의 서쪽 10리 지점에 있으며, 산중에 돌을 포개서 만든 둔덕이 있고, 사면이 모두 층계로 되어 있는데, 왕릉이라는 전설이 있다' 라는 그런 기록도 있단다.

"여러가지 자료를 살펴보면 이 돌무덤이 왕릉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 돌무덤이 구형왕릉이라는 확실한 학계의 정설은 없지."
"참! 김유신과 구형왕과는 대체 어떤 관계였나요?"
"구형왕은 가락국 겸지왕의 아들이지. 어머니는 신라 각간 출충의 딸인 숙이고 김유신과는 증조부 사이지."
"그 참! 정말 묘하게 얽혀 있네요."

그래. 벚꽃이 하이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이번 주말에는 산 맑고 물 맑고 공기 맑은 산청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봄빛을 품은 지리산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산청 구형왕릉에 가서 우리나라의 고된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보자. 더듬다가 행여 목이 마르면 근처에 있는 '유의태 약수터'에서 약수를 마시며 삶의 갈증을 달래보자. 벚꽃 한점 띄워놓고 마시면 더욱 좋으리라.

☞가는 길/1.서울-대진고속도로-함양-진주I C-생초I C-약 40분-생초-약 10분-구형왕릉
2.서울강남터미널-진주고속버스터미널-진주시외버스터미널- 산청시외버스터미널-구형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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