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신문의 사회면에서 <망가지는 청소년.."간섭이 싫어서 1년에 10만명이나 가출">이라는 주제로서 작금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청소년들의 가출문제를 시리즈로 다뤘기에 관심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들 가출청소년들의 가출이유는 "가족의 갈등이나 부모의 지나친 간섭"에서부터 "친구들과 신나게 놀려고" 또한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충동적으로" 등 실로 다양했습니다.
저는 작년의 어느 여름날 밤에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있는 목척공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날 그 공원에 간 것은 한가하게 바람이나 쐬려고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인의 고교생 딸이 그날 가출을 했다고 해서 대경실색한 그 지인이 절보고 목척공원과 그 부근 일대를 예의주시하여 딸아이를 찾아달라는 신신부탁을 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지인이 그처럼 부탁을 하기에 시내의 유흥가와 번화가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목척공원까지 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참으로 목불인견的인 상황과 맞딱뜨려야 했습니다. 중,고교생들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무리를 지어 흡연을 하는가 하면 남녀 학생들이 뜨거운 포옹에다 음주까지 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지요. 또 한 편에서는 집단 패싸움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심한 말로 하자면 마치 "청소년 해방특구"와도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공원의 한 벤치엔 혼자 앉아 마치 넋이 나간 사람마냥 동공(瞳孔)에 중심이 없어 보이는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도 여식을 키우고 있는 아비인지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 봤습니다.
"보아하니 학생 같은데 지금 이 시간에 집에 안 가고 여기서 뭐해? 부모님이 기다리시잖아..." 그러자 저의 위 아래를 재빠르게 훑던 그 소녀는 마지못한 듯 "집을 나왔어요..."라고 힘없이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이 어딘지는 내 잘 모르겠지만 얼른 집으로 들어가, 세상은 학생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녹록하고 만만한 데가 아니라구!"라고 일렀지요. 그리곤 다시금 서둘러 지인의 딸을 찾으려 그 곳을 떠났는데 그 소녀가 그날 자신의 집으로 다시 돌아갔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제가 잘 알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튼 청소년들이 가출을 하면 그 시간 이후부터는 냉혹한 사회와 맞딱뜨려야 하는 것이 엄연하고 차가운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작금에 사회문제화 되고있는 일부 청소년들의 인터넷을 매개로 한 '원조교제'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몸을 추하게 더럽히면서까지 돈을 모아 그 돈으로 흥청망청 쓰는 것이 정녕 보람이자 재미일까요?
매사가 마찬가지이듯 청소년들 역시도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때의 그러한 실수 등으로 인해서 평생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 경우를 저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많이 봐 왔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좋은 일보다는 궂은 일이 더 많음은 아마도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부모님이 자기 자식들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부모님의 말씀을 "나를 미워하니까..." 라든가 "우리 부모는 맨날 공부만 하라고 해서 미치겠어" 혹은 "내가 뭐 공부나 하는 기계인가..."라는 따위의 왜곡된 편견의 시각으로 보고는 분기탱천하여 집을 나오는 어리석은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가출을 하면 당장에 수중에 돈이 없으면 밥 한끼를 먹기조차도 버거운 것이 차가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돈벌이를 할 수가 있을텐데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지금은 제2의 IMF라느니 최악의 경제상황이라느니 하여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못 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 수인 시대입니다. 또한 직장은 직장대로 "구조조정"이라는 망령이 시도 때도 없이 직장인들의 목을 옭아매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오래 전에 10대 시절을 보냈지만 요즘 10대들의 생각은 우리들 기성세대들처럼 고루한 것이 아닌 인터넷과 핸드폰, 그리고 첨단의 문명기기들과 함께 어울리는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는 것도 많고 취득하는 정보량 역시도 압도적이긴 합니다. 하지만 너무 획일적인 문화의 답습이 신드롬처럼 물듦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꼴불견인 형형색색의 머리염색들이 그렇고 귀가해서는 다들 인터넷에 미치는(?) 행태에서 과거 제가 청소년기(期) 였을 적엔 실재했던 호연지기가 실종된 것이 아닌가 싶어 우려스럽습니다.
각설하고 가출이란 집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마음의 문을 찢고 나가는 것입니다. 일주일동안 돈 몇 푼 벌자고 무수한 사람들에게 굽신거렸으면서도 주말 외식 때 자식들이 피자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노라면 일주일간의 스트레스가 깨끗이 날아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 땅의 아빠이자 엄마인 것입니다.
자식들은 눈으로 눈물을 흘릴지 모르지만 엄마와 아빠는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의 옛말에도 "부모가 돼 봐야 자기 부모가 자신에게 쏟아부었던 자식사랑의 실체를 비로소 느낄 수 있다"고 했던 것입니다.
또한 공부는 다 때가 있는 법입니다. 제 여식이 지금 고 2 학생인데 학생의 본분은 말 할 것도 없이 공부입니다. 혹자는 "가방 크다고 공부 잘 하냐" 또는 "학교서 공부 잘한 놈 치고 사회 나가서 잘 된 놈 못 봤다"는 따위의 우스개 소리도 합니다.
하지만 학벌에 대한 편견이 심하고 또한 학력 지상주의가 고착화된 이 사회에서 청소년기 때부터 벌써 무작정 가출이나 하여 부모의 속을 까맣게 태운다던가 공부에 등한시한다면 어쩌면 원초적으로 늘상 어렵게 살아야만 하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인생이란 장거리 마라톤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하기에 지금 어렵다고 해서 중도에 쉬 포기해서는 결코 결승점에 이를 수 없지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섶에 눕고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서 원수를 갚으려고 괴롭고 어려움을 참고 견딤의 비유입니다.
중국의 춘추시대 때 월왕(越王) 구천(勾踐)과 취리에서 싸워 크게 패한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적의 화살에 부상한 손가락의 상처가 악화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BC 496).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夫差)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으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오왕이 된 부차는 부왕(父王)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섶(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고[臥薪]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부왕의 유명을 외치게 했습니다.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이처럼 밤낮 없이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로부터 10년도 훨씬 더 지난 후 부차는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월나라로 쳐들어갔고 그 전쟁에서 이겨 드디어 천하의 패자(覇者)가 됐습니다. 그가 당시에 순간적인 어려움에 굴복하는 일부의 요즘 청소년들처럼(자살 또는 가출하는) 행동하였더라면 그는 일개 부끄런 패장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인생이란 본디가 길흉화복과 호사다마의 연속인지라 좋은 일보다는 궂은 일이 더 많음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부모님은 그 누구라도 자신의 자녀가 잘 되길 학수고대하는 법임은 만고불변의 이치입니다.
그러하기에 한 때의 부모님에 대한 섭섭함과 이런저런 풀리지 않는 현실에 비분강개하여 젊은 혈기를 이기지 못해 엉뚱한 일을 벌리고 가출하는 따위의 어리석음은 결코 피해야만할 것입니다.
'고진감래'라는 말처럼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낼 때 분명 '승리'와 '성취'라는 과실은 분명 청소년들에게 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확언합니다. 어둠의 끝에는 반드시 새벽의 밝음이 따라오듯이 말입니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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